(의정부의 땅이름-73)아래 구석말
상태바
(의정부의 땅이름-73)아래 구석말
  • 관리자
  • 승인 2017.12.20 13: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추윤 논설위원·신한대 중앙도서관장

‘구석’의 원뜻은 ‘대합실 구석’, ‘담벼락 구석’과 같이 <모퉁이의 안쪽>, ‘믿는 구석’, ‘마음 한쪽에 빈 구석이 있는 사람’과 같이 <마음이나 사물의 한 부분>, ‘대낮에도 컴컴한 다방 구석’, ‘시골 구석’과 같이 <잘 드러나지 않는 치우친 곳을 속되게 이르는 말> 등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아래(아랫)말은 위(윗)말과 상대적으로 봐서 낮은 곳을 말한다. ‘말’은 ‘마을’을 축약한 단어이다. 그리고 마을은 원초적으로 마실에서 유래했다. 산간마을에서는 지금도 이웃집 사랑방에 놀러가는 것을 마실간다고 한다. 구석말은 또 다르게 ‘구성말’로도 부르는데, 이것은 ‘구석마을-구성마을’로 음운이 변천되어서 형성된 것이다.

아래 구석말은 고산동의 신숙주 묘소 뒤쪽 아래의 구석진 곳에 있는 마을에서 유래했다. 이 마을은 신숙주 후손들의 묘소가 많이 있다. 이중에서 양주목사를 지낸 신경락(申景洛) 묘소가 유명하다. 신경락 묘는 구성마을 초입에 위치한 갓바위 가든의 뒷산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 안쪽에 신숙주 묘소가 있다. 신경락(1556-16150은 선조 때의 문신으로 자는 사중(士中), 호는 송촌(松村)이다.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의 유생이 되었고 의금부 도사에 올랐다. 이후 사헌부 감찰, 연기현감 등을 역임했다.

선조 38년(1605)에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형조좌랑, 성균관 직강, 사예, 군기사정 등을 거쳐서 동부승지, 홍주목사까지 지냈다. 봉분의 지름은 580cm, 높이는 200cm이다. 봉분은 동향이고 부인 파평 윤씨와 합장이다. 봉분 앞에는 효종3년(1652)에 세워진 묘표가 있다. 묘표 앞에는 2기의 고석이 받치고 있는 상석과 사각의 향로석이 있는데 비좌의 크기는 57×3×411, 비신의 크기는 57×19×101cm이다. 묘소의 남쪽 10여 미터 거리에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신도비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비신과 비개는 암석으로 제작되었다. 비개의 전면에는 용두마리와 구름문이 조각되었는데 서로 마주보고있는 형상이며, 뒷면에는 해와 구름문이 조각되어있다. 비신의 앞면에는<贈判書行通政大夫洪州牧使松村高靈申公墓碣銘(증판서행통정대부홍주목사송촌고령신공묘갈명)>이라고 새겨져있다.

정두경이 찬했고, 1654년에 세워졌다. 홍주(洪州)는 지금의 충청남도 홍성(洪城) 군을 말한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