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의 땅이름-68)월남촌(越南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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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의 땅이름-68)월남촌(越南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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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0.02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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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추윤 논설위원·신한대 중앙도서관장

의정부동에는 외지 지명에서 유래한 좀 특이한 연백촌과 월남촌이 있다. 경의초교 동쪽에 월남촌이, 옛 병무지청 자리인 의정부시 평생교육센터 남쪽에 연백촌이 있다.

연백촌은 의정부3163번지일대이며 한국전쟁 당시 황해도 연백에 살던 피난민들이 모여 들어서 형성된 마을이다. 월남촌은 의정부3136번지와 137번지 일대로 월남전에 참전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1970년대 말 이후부터 단독 주택마을을 이루며 살았다하여 붙여진 마을지명이다. 월남은 베트남을 말한다.

19458월 일본이 항복한 뒤에 베트민은 하노이를 점령하고 그해 92일 베트남민주공화국의 수립과 독립을 선포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베트남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19461123일 하이퐁 항구에 함포 사격을 가해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일으켰다.
전쟁은 195457일 프랑스군의 거점인 디엔비엔푸가 함락될 때까지 9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해 7월 제네바에서 휴전협정이 성립되어, 베트남은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다.

제네바협정에서는 1956년 국제감시위원회의 감독 아래 베트남 전역에 걸쳐 자유선거를 실시하도록 규정했으나 1955년 미국의 지원을 받아 남베트남(베트남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된 지엠(Ngo Dinh Diem) 대통령은 선거 실시를 거부했다. 1963년 민 장군 등은 미국의 묵인 아래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지엠을 죽이고 정권을 장악했다. 하지만 1964년 칸(Nguyen Khanh)이 다시 쿠데타를 일으키는 등 남베트남 정권은 잇따른 쿠데타로 크게 불안정해졌다. 이렇듯 남베트남의 상황이 악화되자 미국의 존슨 정부는 남베트남에 주둔하는 미군을 증가시켰다. 그리고 북베트남이 미국 구축함에 어뢰 공격을 한 통킹만 사건을 구실로 196487일 북베트남에 폭격을 가해 북베트남과의 전면전으로 확대했다.

미국은 그 뒤 1968년까지 북베트남에 약 100만 톤에 이르는 폭탄을 퍼부었으며, 55만 명에 이르는 지상군을 파병했다. 그리고 동남아시아조약기구(SEATO) 등에 파병을 요청해 한국, 호주, 뉴질랜드, 태국, 필리핀 등의 참전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은 1968130일 음력 설날을 이용한 구정대공세를 펼쳐 주요 도시들에서 미국과 동맹국들의 주요 시설을 점령했다.

미국에서는 반전 여론이 높아짐에 따라 그 여파로 존슨 대통령은 재선에 실패하고 군사개입의 중단을 내세운 닉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닉슨은 1969닉슨 독트린을 안보외교 전략으로 내세우며 미군의 철수 계획을 발표하였다.

한편 한국은 월남 전쟁에 미군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병한 국가이다. 한국은 19649월 의료진을 중심으로 한 비전투요원을 파견한 것을 시작으로 30만 명이 넘는 전투 병력을 월남에 파병했다. 그 과정에서 160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많은 참전 군인들이 고엽제 피해 등의 후유증에 시달렸다. 참전 군인들은 그 당시 약간의 자금을 마련하여 귀국 후에 어느 정도 경제적 자립기반을 다지면서 집단적으로 모여 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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