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의 땅이름-66)장수원(長水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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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의 땅이름-66)장수원(長水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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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8.3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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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추윤 논설위원·신한대 중앙도서관장

의정부시 호원동 신한대학교 앞 삼거리에서 서울 쪽으로 약 100여 미터쯤 가면 왼쪽 도로변에 초라한 장수원이란 조그마한 간판을 단 한약방이 있었는데 2~3년 전에 상점을 리모델링하면서 없어졌다. 장수원이란 약방 간판이 지니는 화석지명(化石地名)적 가치는 매우 큰데 안타깝다.

이것은 조선시대에 이곳에 장수원이란 공용여관이 있었기에 연유한 지명이다. 다락원에서 북쪽으로 4km정도 떨어진 이곳에 장수원이 있었다. 중앙관청의 공문을 지방관청에 전달하며 외국 사신의 왕래와 관리의 여행 또는 부임 때 마필을 공급하던 곳을 역()이라 하고, 숙식 편의를 제공하던 공공 여관을 원()이라 했다. 역과 원은 서로 밀접한 관련하에 설치되기 때문에 흔히 역원(驛院)이라 일컬었다.

다락원이 한양과 동북지방을 오가는 상인들의 중심지로 번성을 이루자 불과 4km정도 떨어진 장수원에도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졌다. 동북지방의 특산물인 어물, 마포, 약재 등이 한양으로 흘러 들어오고 한양에서는 비단, 지전, 인삼 등이 흘러들어갔다.

장수원은 원도봉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 동쪽 수락산 기슭에 동막골이란 마을이 있다. 포천 방면에서는 옛날에 주로 이 길을 이용하여 한양에 드나들었는데, 이곳에 주막이 있었다 한다. 도봉산 기슭의 구바위소는 회룡사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구바위에 부딪혀서 형성되었던 소()로 명주 한필이 다 들어갈 정도로 깊었으나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물의 흐름을 외미 갱개(更改)로 바꾸어 놓아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장수원 지명은 이 물길이 하류의 삼형제소(三兄弟沼) 까지 <길게 흐르는 물이다>하여 긴 장()에다 물 수()를 차용한 지명이다.

장수원에 관한 옛 기록은 명종실의 양주 출신 조선의 유명한 의적 임꺽정(?~1562)에 나온다. 포도대장 김순고가 아래와 같이 아뢰었다. ‘풍문으로 들으니 황해도의 흉악한 도적 임꺽정의 일당인 서임이란 자가 이름을 엄가이로 바꾸고 숭례문 밖에 와서 산다하여 가만히 엿보다가 잡아서 범한 짓에 대하여 추문하였다. 그가 말하기를 지난 95일에 우리가 장수원에 모여서 궁시()와 부근(도끼)를 가지고 밤을 틈타 성안에 들어가 전옥서의 옥문을 부수고 우리 두목 임꺽정의 처를 꺼내가려고 하였다. 전날 장통방에서 엄습하여 잡으러 할 때 임꺽정은 달아나고 그의 처와 3인만 잡혔다. 그 처를 꺼낸 다음 오간 수구를 부수고 도성을 빠져 나가려고 하는데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고 선전관 정수익에게도 아울러 말을 주어 급히 보내라하였다. 이 기록으로 보아 장수원은 16세기 중반 한양 도성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묵어가는 거처였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의정부 쪽에서 보면 장수원-아래 다락원(하누원)-윗 다락원(상누원) 등으로 위치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시대 한양에 인접한 다락원(누원)은 현재 도봉산역 환승 주차장 인근에 다락원터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데 의정부 호원동 신한대 앞 삼거리에도 장수원터 표지석을 세우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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