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백리는 고려시대부터 있던 제도다. 고려시대에는 청백리를 뽑을 때, 백성들에게 올바른 정치를 베풀고, 백성들을 인자한 마음으로 대하고 바르게 가르치며, 왕의 뜻을 잘 받들어 도리에 어긋남이 없이 일을 잘하는 관리 중에서 마음이 넓고 어진 사람만을 가려 뽑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중요한 관직에 있는 신하들과 사헌부와 사간원 등에서 추천하여 선정하였는데, 인자하고 청렴결백하며 공무를 능률적으로 수행하고 국가에 특별히 공헌한 것이 있어야 청백리가 될 수 있었다.
'청백'이라는 말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청렴결백(淸廉潔白)'에서 나온 것으로, 동양사회에서 가장 이상적인 관료상을 일컫는 으뜸 미덕 중 하나이다. 이런 청렴한 관리가 살아있을 때에는 ‘염근리(廉勤吏)’라 불렀고 죽은 후에는 ‘청백리’라 불렀다.
염근리에게는 상을 주고, 청백리는 그 뜻을 기리고 그 자손들을 관리로 채용해 주었다. 염근리로 선발된 사람은 승진이나 보직에 많은 특혜를 받았고, 죽은 후에도 자손들에게 벼슬을 주는 등 여러 가지 혜택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는 관료로서 큰 명예였으며 가문을 빛내는 일이기도 하였다. 오늘날도 ‘청백리’는 깨끗하고 국민을 섬기는 자세로 업무를 수행하는 공직자를 지칭한다.
반대로 부정부패한 관료는 탐관오리(貪官汚吏) 혹은 장리(腸吏)라고 불렀다. 탐관오리로 지목되어 탄핵을 받거나 처벌을 받은 관리들은 장리안(腸吏案)에 수록되어 본인의 관직생활이 막히는 것은 물론 그 자손들이 과거를 보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한번 장리로 지목되면 당사자가 관직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은 물론, 두고두고 가문의 수치가 되기도 하였다. 그만큼 조선시대에는 청백리와 탐관오리에 대한 관리제도가 엄격하였다.
청렴은 예나 지금이나 공직사회의 이상이다. 그러나 시스템적으로 부정부패의 달콤한 구조가 더욱 견고해지고 있는 지금, 공직사회가 알아서 청렴하길 바라는 우리의 바램은 반성과 숙고가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과거 실록을 보면 청백리의 대표로 추앙 받던 황희 정승의 경우도 부정하고 부패한 일로 많은 구설수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청렴은 그 만큼 힘들다는 것의 반증이 아닌가 생각한다. 인간의 의지로 힘든 것을 이상과 바램만으로 갖고 있는 것보다는 사회적 시스템으로 그것을 강제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원치 않는 법과 제도가 자꾸 생산되기 한다. ‘김영란법’이라 불리는 ‘부정청탁금지법안’이 그것이다.
박근혜대통령이 세월호 사건과 관련하여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관피아’를 척결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명하였다. 대통령의 이 말이 나오자마자 검찰에서는 관피아 비리를 척결하겠다고 난리다. 관피아는 퇴직관료의 재취업 관행으로 공직 유관단체나 재임시절 관련한 업무를 맡고 있던 민간에 재취업하는 경우를 말한다.
공무원 재임시절 갈고 닦은 경험을 민간에서 순기능적으로 발휘하자는 취지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이 이권이나 비리, 부패를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은 공직사회가 당연히 반성하고 책임을 져야 할 일이다.
마피아에 빗대 관피아라는 신조어를 만들 정도면 그 폐해나 비리 정도, 그리고 그 구조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듯하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과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효과적인 방안이 구축되길 촉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