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년 11월 21일 우크라이나의 EU와의 FTA중단, 러시아와 관계 강화선언 후, 대규모 군중 시위가 일어났고, 친러시아 성향의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탄핵당하여 러시아로 망명길에 올랐다. 우크라이나는 서쪽 절반은 친서방계이며 동쪽은 친러시아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어 나라가 동서로 갈라져 있다.
대통령 탄핵 이후 러시아가 군대를 크림반도로 파견하여 사실상 장악하였고, 마침내 크림자치 공화국은 2014년 3월 16일 러시아와 합병을 위한 주민투표에 들어가 96.8%의 찬성이 나왔다.
크림반도는 러시아 함대가 지중해로 나가는 흑해의 전략적 요충지로 심페로폴 군항이 있기에 1921년 소련에 합병될 당시부터 ‘크림 사회주의 자치공화국’으로 인정받았다.
당시엔 타타르계가 많았으나 1944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 이후 현재는 러시아인이 60%를 차지하고 있다. 구소련 해체 이후 1992년 우크라이나 독립 시에도 자치공화국으로 인정받아 외교권과 군사력을 제외한 모든 자치권을 누리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인 1945년 8월 9일 소련은 연합국으로 대일전에 참전하면서 만주를 통해 한반도의 북쪽을 거침없이 진주하였고, 미국의 저지로 3.8선 이남으로는 전진하지 못하였다.
일본군 무장해제를 명분으로 참전국의 지위를 얻으면서 발틱함대의 부동항을 얻기 위해 극동아시아 한반도로 진출하였다. 이와는 반대로 슬프게도 중국 각 지역에 흩어져있던 독립군들은 ‘광복군’을 결성하고 국내 진입작전을 계획 중이었는데, 예상보다 빠른 일본의 항복으로 해방 후 건국과정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소련의 참전과 북한으로의 진주는 그만큼 그들에게 한반도는 러시아의 크림반도처럼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친러, 친서방으로 갈라져서 그 틈바구니에서 줄다리기 외교와 국민통합이 절실한 모양새도 우리와 너무나 흡사하다.
우리는 세계 2위의 무역대국 중국과 세계 3위의 일본 사이에 있다. 우리가 세계12~13위 경제 대국이 되었으며, G20 회원국이 되었다고 우쭐한 마음도 있을 수 있으나, GDP 대비 투입비율과 규모로도 국방예산이 그들보다 턱없이 부족하다. 강대국의 힘만 의지하다 관계가 달라져 힘을 빌리지 못할 때 엄청난 힘의 공백이 닥칠 수가 있다. 우리는 전략적 요충지에 살고 있기에 최소한의 전쟁(침략) 억지력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천영우 前 외교안보수석은 2015년으로 예정된 전시작전권 환수의 재연기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북한 급변사태 시 미군은 북한 내 대량살상무기 제거에 투입될 뿐 북한 전역의 안정화는 한국군의 몫이 될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 북한지역을 짧은 시일 내에 군사적으로 장악하는 데 있어 전작권을 우리가 행사하고 안 하고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천 수석의 입장을 들으면서 광복군의 국내 진입작전이 이뤄지지 않은 안타까움이 가슴 깊이 오버랩 된다. 많은 다른 시각도 있지만, 자주권이 없을 때 외세에 의해 휩쓸렸던 우리의 과거가 지금 이 시각에도 역시 해당되는 현실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