禮에 대한 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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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에 대한 斷想
  • 관리자
  • 승인 2011.02.27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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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學 홍 경 섭

사회가 있는 곳에는 법이 있기 마련이다. 여기에서의 법은 단순히 형벌을 수반하는 국가의 강제적 법령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넓은 의미의 법은 인간이 사회를 이루어 공동생활을 해나가는 데에 있어서 상호 인간관계를 부드럽고 원만하기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도의 행위규범을 의미하는데, 여기에는 사회적인 윤리도덕이 포함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인 행위규범으로서의 윤리도덕에는 전통적인 예(禮), 예절이 전형적으로 손꼽힌다. 실제로 예는 본래 중국의 하(夏), 은(殷), 주(周) 3대에 걸쳐 오랫동안 국가의 기본적인 통치제도이자 사회적인 근본규범이었다. 바로 진한(秦漢) 이래의 法과 같은 성격과 기능을 지니는 것이었다.

禮란 요즘 말로는 교양있는 행동양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서양의 에티켓과 비슷한 개념에 속한다. 다른 모든 사회규범이 그러하듯이 예도 다수의 자유와 공동의 권익이나 편리를 위해 개인적인 감정과 욕망을 각자 스스로 ‘절제’하는 공중도덕이다. 예를 보통 예절이라고 일컫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예가 비록 사회적인 윤리규범이라고 할지라도 그 근본적인 출발점은 자기절제(自己節制)에 있다. 그러기 때문에 공자는 일찍이 자기를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는 것(克己復禮)을 최고의 도덕 인(仁)으로 규정하였고, 맹자도 사양(辭讓)하는 마음을 예의 발단이라고 주장하였다. 자기보다는 남을, 개인보다는 전체를 먼저 생각하는 데에 예의 근본이념이 존재하는 까닭이다. 따라서 예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겸양과 공경이 가장 주요한 덕목이 된다.

그런데 시대가 지나면서 예의 이러한 기본정신이 퇴색되고 말단지엽적인 형식이 번잡해지면서 그 본말(本末)이 뒤바뀌기에 이르렀다. 부귀한 자는 화려와 사치로써 예를 잘못 행하고, 빈천한 자는 예를 부귀한 자의 전유물로 간주하여 아예 버리고 행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이로 말미암아 예가 체면이나 차리는 번잡스러운 겉치레로서 편협하게 오해되어 점차 외면당하고 쇠퇴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예는 마음에 있지 물건에 있지 않기 때문에, 예를 행하는데 사치스러울 바에는 차라리 검소한게 낫다. ‘천리 먼길에 거위터럭만큼 사소한 선물을 보내도 예물은 가볍지만 그 인정이 무겁다.(千里送鵝毛, 禮輕情意重)’라는 격언은 바로 이러한 예의 본질을 간명하게 표현해 준다.

사실 예의 형식은 개별적인 인간관계와 구체적인 상황, 주체와 대상 및 때와 장소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그래서 옛부터 큰 예의(禮儀)만도 삼백 종류, 작은 예절은 삼천 가지에 이른다고 하였다. 당시 사회로 보아도 배우기 어렵고 행하기 번거로운 것이어서 사대부와 같은 통치계층이나 지식인도 완전히 통달하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그러니 시대가 바뀐 현대 산업사회에서 옛날의 예절 형식이 아무 의미 없고 고리타분한 유습(遺習)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예의 근본정신과 본래의 취지를 이해하여, 현대사회의 실정과 수요에 맞게 그 형식을 적절하게 변용하여 창조적으로 계승한다면, 예의 기본적인 사회규범성은 여전히 우리의 생활속에 살아 숨쉬게 될것이다.

예가 기본 성격상 자아(自我)를 절제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감정의 억제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감정에 순응하여 그것을 조절하도록 인도하는 것이 본래의 이념이다. 즉 예는 성인(聖人)이 천리(天理)와 인정에 근거하여 인간의 사회생활에 부합하도록 제정한 것이다. 다만 개인적인 욕망을 절제하여 넘치지 않도록 함으로써 범죄와 환란을 미리 예방하자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사람의 육체적 욕망과 물질적 욕구는 만족할 줄 모르고 무한하여 개인적인 인격수양과 사회적인 윤리도덕규범으로 적절히 절제하지 않으면 넘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는 홍수의 범람을 방지하는 제방(둑)에 비유된다. 또한 욕망이 사람을 침공하는 것은 총칼보다도 무섭고, 예절이 사람을 수호하는 것은 성곽보다 더 안전하다고 하는 옛 성현의 말씀도 이러한 연유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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