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언제인데 아직도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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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가 언제인데 아직도 여전히
  • 한북신문
  • 승인 2023.11.02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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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저 이산 윤선거와 회덕 송시열 간의 분쟁은 진정 사문(斯文)의 커다란 시비가 걸린 문제로서 문인 제자들이 각기 자신의 소견에 따라 구체적인 사안을 가지고 분명히 변별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몸과 마음보다 더 중대한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지금 이 광대하고 텅 비어 밝은 마음을 전부 이 한 가지 일에 쏟아 넣은 나머지 옹호하고 배척하는 데에 얽매여 백 가지의 적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마음속에 항상 분노하고 유감스러워 하고 답답하고 험하여 평탄하지 못한 생각들을 가득 쌓아 둠으로써 공평하고 바르고 크고 깨끗하고 맑고 온화한 기상과 같은 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면 어찌 너무도 본말과 경중의 구분을 모르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위의 글은 농암 김창협이 외삼촌 나양좌에게 보낸 서간에 나온다.

성혼은 자신의 제자였던 윤황을 사위로 삼았는데 그 윤황의 아들이 바로 윤선거였다. 윤선거는 송시열, 윤휴와 동문 친구였는데 절친이었던 송시열과 윤휴가 예송으로 사이가 틀어지고 나아가 윤휴가 주자의 경전 주석에 이의를 제기하며 독자적인 해석을 시도하자 결국 송시열은 윤휴를 <사문난적>, 즉 ‘학문의 역적’으로 몰아가며 극한 대립을 벌이게 된다.

그리고 이 둘 사이를 화해시켜 보려고 나섰던 윤선거와도 사이가 틀어지게 된다.

이 때 윤선거가 죽으니 윤선거의 아들 윤증은 부친의 절친이자 자신의 스승이었던 송시열에게 부친의 신도비명 찬술을 부탁하지만 송시열은 박세채가 쓴 윤선거의 행장을 인용할 뿐 비명찬술을 거부하게 된다.

거듭되는 간절한 부탁에도 찬술이 거부되자 결국 제자 윤증과 스승 송시열 사이에 논쟁이 시작된다. 이른바 <회니논쟁>이다.

이 논쟁을 계기로 조선 지식계는 송시열에게 동조하는 노론과 윤증의 입장을 지지하는 소론으로 분열되어 이후 치열한 당쟁이 전개된다.

소론에 동조하는 외삼촌과 박세당의 사변록을 검증하는 실무를 맡은 송시열 편의 조카 김창협이 나눈 서간에는 “광대하고 텅 비어 밝은 마음을 전부 이 한 가지 일에 쏟아 넣은 나머지 옹호하고 배척하는 데에 얽매여 백 가지의 적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라는 현실진단과 함께 “마음속에 항상 분노하고 유감스러워하고 답답하고 험하여 평탄하지 못한 생각들을 가득 쌓아 둠으로써 공평하고 바르고 크고 깨끗하고 맑고 온화한 기상과 같은 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되었다”는 자기 고백이 토로된다.

이른바 진영논리에 빠져 본말이 뒤집히고 정오(正誤)가 뒤바뀌는 조선 후기 정치, 사상계의 혼란과 추태가 역력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의 정치 현실을 보자.

300여년의 세월이 흘렀고 심지어 당쟁의 지독한 폐해로 국운이 쇠락하여 40년 가까이나 망국의 설움을 겪었으며 현재도 분단된 좁은 국토 안에서 피 흘리는 동족상잔의 처절한 아픔을 겪고서도 단지 진영의 논리만 내세운 편협한 정치놀음은 그칠 줄을 모른다.

민생은 물론 나라 안팎의 이 위기조차 정치인 그들은 전혀 아랑곳이 없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초막절 안식일이라는 거룩한 날에 이스라엘을 공격하자 하나님이 주신 신성한 조국을 지키겠다며 부랴부랴 귀국하는 이스라엘 청년들의 헌신과 단결을 이제라도 배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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