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명절과 노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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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명절과 노숙인
  • 한북신문
  • 승인 2023.10.05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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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식 의정부시 희망회복종합지원센터장 뇌과학박사.교육학박사
김충식 의정부시 희망회복종합지원센터장 뇌과학박사.교육학박사
김충식 의정부시 희망회복종합지원센터장 뇌과학박사.교육학박사

 

추석이다. 추석은 음력 8월15일로 일년 중 달이 가장 밝은 날로 예로부터 우리 민족에겐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였다. 예의를 특별히 강조하는 우리에게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뵙는 일은 당연했다.

각 회사에서는 공장의 노동자들을 지역에 따라 버스까지 대절해서 귀성길 지원에 나서고, 기차표는 추석 한 달 전부터 예매를 시작하고, 당일 날은 줄을 서서 기차표를 끊었다.

모든 교통수단이 말 그대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이미 꽉 막혀 주차장이 된 고속도로를 10여시간 동안 가는 일은 너무나 익숙한 일이었다. 돼지고기, 소고기, 사과, 배, 곶감 등을 바리바리 싸서 한 보따리 만들고 낑낑대며 시골집을 가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소쿠리에 커다란 쌀 반죽 덩어리를 놓고 빙 둘러앉아 만드는 송편빚기는 완전 고된 작업이었지만 당연하게 진행했다.

송편 속은 깨 볶음과 콩 등이 주류를 이루었다. 송편빚는 중간 중간에 쪄진 송편을 한입 베어물며 깨 볶음을 향한 기대감을 갖는 것 또한 하나의 재미였다. 지금은 많이 현대화되어 의미가 퇴색되어 가지만 그 기억만큼은 또렷이 남아 있다. 육체적으로는 힘은 들지만 푸근함이 있어 가슴 설레이며 기다리곤 한다.

우리들에게 추석명절은 소중한 기억이자 추억이다. 필자가 시설장으로 있는 희망회복종합지원센터에는 현재 9명의 한데인(노숙인)이 생활하고 있다. 그리고 자립을 위해 비주택이라 불리우는 고시원 등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이 약 40명이고 전세임대 주택에서 생활하시는 20여명이 계신다.

대부분이 우리로서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깊은 아픔을 갖고 있다. 우울과 불면은 기본이다. 자존감과 자신감은 이미 존재조차 퇴색된 지 오래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무기력에 빠져 있다.

그러나 이 분들도 오래 전 추석명절에 대한 기억은 똑 같다. 추석 상차림 등에 대해선 한마디씩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 한다. ‘홍동백서’니 ‘어두육미’니 전문가가 따로 없다. 이럴 때 만큼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다.

이번 추석의 연휴는 6일이나 된다. 혹시 외출이나 외박 계획을 물으니 전혀 없다. 그냥 센터에만 있을 거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센터장의 직책을 맡은 이후로는 추석과 설 명절 때 시골에 가질 못했다. 종교를 떠나 차례상이라도 차려 드리고 함께 송편 등 추석음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야 할 것만 같았다.

이용인 분들이 원하는 대로 차례도 지내고 추석음식도 먹으면서 옛 기억을 소환하곤 했는데 이번 추석도 똑같을 것 같다. 문제는 6일 동안 먹을 음식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소한 추석 분위기는 접할 수 있게끔 하는게 내 역할이다.

다행히 의정부명지회와 샘솟는공동체, 온기심회 등 봉사단체에서 송편과 전 부침 등을 지원해 주기로 약속을 받았고, 대신 나는 직접 만들기에 함께 하기로 했다. 도움이 될런지는 미지수지만 재미있는 추석연휴가 될 것 같다.

“사회복지시설은 돈이 없나요? 계속 후원해 달라고 하는데 어떤 때는 이유를 모르겠어요”필자가 제일 꺼려 하는 것이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다.

그러나 직접 시설을 경영하다 보니 주어진 예산만으로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특히 한데인(노숙인) 시설의 한계는 노숙인을 먹거리나 의류, 기초 의료서비스 등 실제 생명과 직결되는 기본적인 사업만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은 이분들 보다는 지역의 취약계층이 훨씬 많기 때문에 보조금만으로 사업을 펼친다는 건 불가능하다.

의정부역 서부광장과 가능역에는 노숙인 관련 민원이 많이 발생하는 장소이다. 그러나 정작 노숙인은 없고 지역주민들이 잠시 나와 알콜을 곁들인 모임을 하고 있는 광경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 분들에게는 생수 하나 제공할 수가 없는데, 이것이 보조금 사용용도의 한계이다.

올해에는 지역에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생수가 부족해서 급히 도움을 청했더니 하루사이에 4000여개나 들어 왔고, 여성 의류는 두시간만에 20여벌을 직접 갖다 주셨다.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요양보호사와 제과제빵 자격증을 취득하고, 장애인활동지원사 자격을 취득한 분들이 많아진다.

남아있는 분들 또한 본인도 해 보겠다고 덤벼든다. 지역의 힘은 위대하다는 것을 체감하는 요즘이다. 가장 행복한 추석 명절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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