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 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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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 청소
  • 한북신문
  • 승인 2023.10.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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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소쇄(掃灑)」는 ‘비질하고 물 뿌린다’는 의미로 ‘자신이 있는 처소를 단정히 정리’하는 일을 말하는데 근래는 이를 일본에서 만든 「청소(淸掃)」라는 발로 바꾸어 상용한다.

부처님은 하루 일과를 끝낸 후 잠자리에 들어 <세 때>를 주무셨다는 기록에 근거하여 지금도 수행하는 승려들은 <6시간>을 자는 것이 사찰의 청규(淸規)다. 그러므로 승려들은 저녁 9시에 잠자리에 들어 새벽 3시에 기상하여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 예불이 끝나고 나면 이어 소쇄(掃灑)가 진행되는데 특히 사찰의 법당은 물론 절의 그 너른 마당을 정결히 쓸고 절로 드는 긴 오솔길 역시 빗자루 결이 남도록 쓸고 또 쓴다. 가을이 되어 낙엽이라도 지고 겨울이 되어 함박눈이라도 내리게 되면 이 소쇄는 그야말로 고역(苦役)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단 하루도 이를 그치는 경우는 없다. 경내를 모두 말끔히 닦아내듯 쓰는 일은 노동이 아니라 수행(修行)이기 때문이다.

아침 무렵에 이 소쇄를 끝낸 절 길을 걸어 절집 마당에 들어서 본 이들은 그 뜰의 정갈함에서 자신들 역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마음자리도 함께 추스르게 되는 법이다.

옛 서당에서는 창호지문으로 나뉜 윗방에 스승이 아랫방에서는 학생들이 잠을 잤다. 이른 새벽이면 스승이 먼저 일어나 의관을 정제(整齊)하고 낭랑한 소리로 경문(經文)을 외운다. 그러면 그 소리에 잠을 깬 학동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면벽을 하고 전날 자신들이 배운 글귀를 운에 맞추어 외우며 하루를 시작한다. 한 시각도 넘는 새벽 글 외기가 끝나면 학동 모두가 함께 자리를 털고 비질하고 걸레질하며 정결히 다듬는 소쇄가 진행된다. 여기서도 소쇄는 스스로를 정돈하고 그 정리된 상태로 비로소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는 법이니 소쇄는 스스로를 발로 잡는 교육의 중요한 과정이자 수행이었다.

근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학생들은 집에서 학교로 등교하게 되어 교실은 ‘수행의 공간’이 아닌 ‘학교 시설’이 되었고 소쇄가 아닌 이른바 ‘청소(淸掃)’가 되어 일종의 잡무가 되고 심지어 화장실 청소는 무엇인가 실수를 저지르거나 지적사항을 받은 자가 ‘벌’로 수행하는 벌칙이 되고 만다. 그러더니 학동이 줄고 학령이 낮아지면서 초등학교 1, 2학년의 경우는 엄마들이 순번을 정해 학급 청소를 담당하는 일이 보편화되고 이제는 직원을 고용하여 청소를 학생 대신 청소를 전담하는 쪽으로 변환이 이루어지게 된다.

2010년 10월5일 경기도교육청이 ‘학교교육과정에서 학생의 존엄·가치·자유·권리가 보장되고 실현될 수 있도록’ <학생인권조례>를 만들게 되어 전국 교육청이 이를 동조 입법하게 되고 <아동학대금지법>이 만들어지면서 상대적으로 학생을 지도하고 가르치는 교사들의 입지는 현저히 축소되더니 마침내 우리 교육현장은 차마 걷잡을 수 없는 혼란상황으로 접어들고 말았다.

이제는 교권을 침해당하고도 보호받지 못하는 교사들의 극단적인 선택이 이어지는 지경이 되었다. 정부는 이에 대한 대처의 하나로 문제를 야기한 학생들에게 <벌청소>를 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리되면 내가 공부하는 학교의 교실이나 시설을 청소하는 일이 <벌 받는 행위>가 되고 만다. 한때는 아름다운 수행이었던 소쇄가 이제는 형벌이 되는 것이다.

작금의 상황과 현실에 문득 목이 메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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