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기억을 남기고 생을 마감한 노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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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기억을 남기고 생을 마감한 노숙인
  • 한북신문
  • 승인 2023.06.17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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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식 의정부시 희망회복종합지원센터장 뇌과학박사.교육학박사
김충식 의정부시 희망회복종합지원센터장 뇌과학박사.교육학박사
김충식 의정부시 희망회복종합지원센터장 뇌과학박사.교육학박사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는데 김OO님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가족관계 등을 물어보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설 명절 다음날 직원에게서 온 문자이다. 힘이 빠지고 허무감까지 몰려온다. 그렇게 타이르고 설득하고 정신병원에 행정입원까지 강행했는데 결국은 수 십 개의 소주병이 꽉 차 있는 좁은 고시원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이제 54세가 된 정말 애달픈 대상이다.

공사장에서 막일로 근근이 생활하다가 코로나로 일거리가 중단되면서 2020년 5월경부터 의정부역에서 노숙을 하던 엄청 고집이 센 대상자이다.

지난해 12월 경 엄청 추운 날 밤 진행된 동절기 아웃리치 때 의정부역 내부 의자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던 분이었는데 설득하여 센터로 모셔왔다.

며칠간의 마음 쉼 기간을 거친 후 병원 진료 과정 중 발가락 동상이 너무 심하여 10개 모두를 절단해야 한다고 한다. 몇날 며칠을 고민하더니 수술에 동의하고 절단 수술 후 센터 내에서 짧은 시간이지만 자활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정말 열심히 생활을 하였다.

두 번째 단계로 제도권 안에서의 지원을 위해 생활환경과 건강상태 등을 고려하여 고시원으로 거처를 옮기고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 신청 절차를 진행하였다.

다행히도 2개월여만에 조건부수급자로 선정되었고 이어 본인이 그토록 원하던 임대주택에 들어갈 자격까지 취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또 다시 시작된 음주가 발목을 잡았다. 한번 시작되면 며칠동안 계속된다. 사례관리를 통해 지속적으로 생활 및 건강관련 소식을 접하고 있던 중, 조건부수급자의 기본인 근로활동은 아예 참여하지 않고 3일 동안 소주 35병을 드실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다고 한다.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에 급히 도움을 청하고 함께 고시원을 방문해 보니 말이 안 나올 정도의 극한 상황이었다.

몸은 몰라볼 정도로 바짝 야위었고 패트로 된 소주병이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상태로 인사불성이 되어 누워 있었다.

음식을 거의 섭취하지 않아 죽을 사다 드리면서 3일동안 매일 방문하여 설득하고 또 설득한 끝에 정신병원에 행정입원을 시켰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전화로 이제는 나가도 되니 퇴원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자주 했는데 어느 날부턴가 적응이 되었는지 전화가 뜸하여 안심을 하고 있었고, 3개월 후 만기퇴원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혼자 있어서 그런지 또 술이 시작되었다.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등 지역의 유관기관 담당자들과 부단히도 애를 쓰면서 제 일처럼 보살폈는데, 결과는 고시원에서 쓸쓸한 생을 마감한 것으로 끝이 났다.

이러한 대상자들이 사람을 지치게 하고 슬프게 한다. 20여 년 전에 처와 아들을 버리고 가출한 후 완전히 소식을 끊은 상태였다. 집에 가면 먼저 아내에게 백배 사죄하고 이미 성인이 되어 장가를 갔다는 아들과 며느리, 손자와 오붓하게 살고 싶다고 얘기하곤 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연고처리 되어 세상과의 인연을 단절하였다.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지 자꾸만 되내이게 된다. 코로나19는 세상의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는다. 현재 마스크 해제를 논하고 있으나 휩쓸고 간 자욱이 너무 크고 잔인하기까지 하다.

비주택이라 불리우는 고시원 등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에겐 완전 직격탄이 되었다. 실제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우리 센터의 이용률을 보면 전년 대비 1.7배나 증가한 상태이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한 신규 노숙인의 증가와 고시원 등 비주택에 거주하는 노숙위기 대상자가 많이 증가되었다는 의미가 된다.

비주택에 거주하는 분들은 거의 대부분 막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시는 분들이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들고 당연히 실직상태가 되면서 길거리로 나 앉게 되는 것이다.

매슬로우의 인간의 기본욕구 5단계는 적절한 환경이 제공되어질 때 비로소 인간으로서 자존감을 얻게 되고 자아실현을 위한 노력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은 행복의 근원이다. 그러나 그 전에 가족이 있고 꾸려갈 가정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 전제조건이라는 것을 아프게 체감한다.

아무도 찾지 않은 조그만 공간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 김OO님에 대한 기억들이 오랫동안 아프게 남을 것 같다.

2023년도 우리 센터의 운영방향을 주거지원과 일자리 지원으로 설정하였는데 꼭 아픈 기억을 가지고 시작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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