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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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다방
  • 한북신문
  • 승인 2021.02.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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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흘러버린 세월의 뒤안길을 뒤적여 보면 나에게도 잊혀 지지 않는 기억들이 남아있게 마련이다. 중랑천 둑길을 걸으며 또는 의정부시장을 둘러보면서, 이제는 작아진 내 모교 중앙초등학교 건물을 스쳐지나 갈 때면 그 시절의 친구들 그 시절의 노래들 그 시절의 설레임들을 되새겨보며 이제는 덧없어진 지난날의 한껏 소중함을 절감하곤 한다. 결국은 그렇게 나도 늙나 보다.

다방이라는 곳이 있었다. 친구와 만나고 애인과 만나던 곳, 커피가루에 설탕과 카네이션이라 불리던 크림가루를 섞어 타주던 곳,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커다란 어항과 키 큰 화분들이 있었고 4명쯤 둘러앉는 다탁에는 곽 성냥과 함께 오늘의 운세를 보는 점통과 재떨이가 놓여있던 곳, 1시간 쯤 앉아 있을라 치면 눈치가 보여 한 잔쯤 커피를 새로 시켜야 했던 곳, 성냥곽의 성냥을 다탁 위에 쌓으며 오지 않는 여자 친구를 기다리던 곳, 커피와 홍차, 달걀 반숙, 쌍화차, 칼피스를 팔았고 그리고 아침에는 달걀노른자를 덤으로 얹은 모닝커피를 팔고 국산 도라지 위스키를 잔으로 팔던 곳이었다.

차 맛보다는 틀어주는 음악의 수준과 실내 장식, 그리고 마담의 영업수완과, 레지의 접대능력이 영업의 규모를 좌우하던 곳, 적당히 질퍽하고 적당히 편안하던 곳, 최백호가 부른 낭만에 대하여라는 노래 가사에 나오는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의 모습이다.

의정부중앙감리교회 바로 옆에 있던 그 옛날 식 다방 ‘석 다방’이 문을 닫고 없어져 버렸다. 손님마다 기호를 기억하여 나름 맛있는 옛날 커피를 맞춤으로 만들어주고 무엇보다 쌍화차를 맛있게 끓여내던 유쾌하고 인정 많던 마담이 그만 불시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는 더 이상 운영할 사람이 없어 그리되었다 한다.

이제는 더 이상 의정부에는 그런 옛날식 다방이 없게 되어 버린 작은 상실감으로 가슴 한 켠이 허전하게 비어 온다.

객상들에게 숙박을 제공하던 ‘삼강주막’의 마지막 주모가 세상을 떠난 후 주막이 문을 닫자 예천군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그 주막을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였고 전국에서 수많은 답사객들이 글을 몰랐던 주모가 벽에 식칼로 그어놓은 외상 장부를 보려 모여들고 있다. 문화재가 된 삼강주막에 답사객이 내려놓는 수익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오래되었지만 소중한 내 고장의 유산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속절없이 시나부로 사라져가는 내 고장의 오랜 것들을 남겨 지키고 아끼는 그 마음이다.

흔적을 남기기는커녕 기억조차 챙기지 못한 채 함부로 삭제되는 미군기지들, 가차없이 허물어대는 송산, 신곡의 옛 마을들을 보며 이걸 어쩌면 좋은가? 걱정하는 한 의정부시민의 마음쯤이야 쓸데없는 기우로 치부해 버리면 그만인 것일까?

‘석다방’은 1984년 10월 26일에 문을 열었다가 2020년 어느 날 쓸쓸히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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