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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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교만
  • 한북신문
  • 승인 2020.08.1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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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윤사로(尹師路)라는 자가 있다. 세종의 서장녀 정현옹주(貞顯翁主)와 결혼하여 왕실의 일원이 되었고 수양대군 편에 붙어 단종 복위세력을 숙청하는 일에 앞장서서 공신이 되었다.

실록은 공신이 된 그가 다음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을 도모하였다고 기록한다.

○ “…그 밖의 딸들은 역시 당연히 공신(功臣)에게 주어야 하는데 모름지기 이러한 건백(建白)으로써 일이 만약 이루어진다면, (나는) 송현수의 딸을 받기를 원한다.” <세조 3년 10월 24일 갑인>

그는 도승지 조석문(曺錫文)에게 송현수의 딸을 자신이 가지기를 원한다며 이를 세조에게 간청해 달라는 청원을 하고 있다 송현수(宋玹壽)의 딸이 누군가? 왕위에서 쫓겨 나 영월에서 죽은 단종의 부인, 즉 직전 왕비다. 그 왕비를 자신이 갖겠다고 감히 청구하고 나선 것이다 세종의 사위인 윤사로에게 단종비 정순왕후는 처가 쪽 조카며느리이며 불과 얼마 전까지 고개 숙여 섬기던 왕비가 아닌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권력세력 어디까지 교만해지고 어디까지 몰상식해 질 수 있는지를 확인 할 수 있는 패륜의 현장이다.

○ 박팽년(朴彭年)의 아내 옥금(玉今), 김승규(金承珪)의 아내 내은비(內隱非)· 딸 내은금(內隱今)· 첩의 딸 한금(閑今)은 영의정(領議政) 정인지(鄭麟趾)에게 주고, 조청로(趙淸老)의 어미 덕경(德敬)· 아내 노비(老非), 최득지(崔得池)의 아내 막덕(莫德), 이현로(李賢老)의 첩의 딸 이생(李生)은 좌의정(左議政) 한확(韓確)에게 주고, 성삼문(成三問)의 아내 차산(次山)· 딸 효옥(孝玉), 이승로(李承老)의 누이 자근아지(者斤阿只)는 운성 부원군(雲城府院君) 박종우(朴從愚)에게 주고,.. 이휘(李徽)의 아내 열비(列非), 허조의 아내 안비(安非)· 딸 의덕(義德)은 전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이계전(李季甸)에게 주고, 이자원(李滋源)의 아내 유나매(維那妹), 이개(李塏)의 아내 가지(加知)는 우참찬(右參贊) 강맹경(姜孟卿)에게 주고,... <세조 2년 9월 7일>

권력을 쟁취한 자들의 횡포와 난행은 처참하였다.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처형된 충신들의 아내, 딸, 누이들을 마치 전리품 나누듯 나누어 가진다. 어제까지 조정에 함께 근무했던 동료이자, 한때는 집현전에서 밤을 새우던 다정했던 벗들, 가슴을 터놓고 도덕과 군자의 길을 고담(高談)하던 그들이 친구, 동료의 여인들을 노리개로 나누어 가지는 이 극악한 패륜은 그들이 아무리 세조의 집권에 대하여 정치적 당위성과 거사의 명분을 강조하고 논증한들 결국 그들의 정체는 악독한 반란 집단이었다는 후세의 평가를 면치 못하는 이유이다.

충남지사, 부산시장에 이어 서울시장이 성범죄에 연루되어 불행한 그 직을 떠났다. 거대 여당의 국회 질주가 심상치 않고 정권의 이념을 앞세운 적폐 갈아엎기는 이제 전혀 주저함이 없다. 두려울 것은 행여라도 그 과정에 권력의 교만이 작용한다면 그 결과는 참혹할 것이며 종내는 역사의 암혹한 심판 앞에 서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왕관을 쓴 자는 그 왕관의 무게도 온전히 감당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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