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통일된 남부 베트남의 사회 현실
상태바
공산통일된 남부 베트남의 사회 현실
  • 관리자
  • 승인 2018.08.14 09: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종팔 논설위원·의정부시 재향군인회장

의정부시 재향군인회는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56일간 베트남 호치민(구 사이공)시 일대로 안보견학 방문을 하고 돌아왔다. 많은 기대를 갖고 베트남을 방문해 보니 겉모습과 전혀 다른 충격적인 사회 현실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첫째 베트남의 공산화를 위해 구 월남정부와 파월된 미군과 한국군을 상대로 전투를 하였던 남부 베트남 민족해방전선 전사들인 베트콩들은 통일된 베트남의 재향군인회 회원이 없었다.

현재 베트남에서 재향군인회의 위상은 행사시 경찰들이 에스코트를 하는 등 사회적 영향력이 대단하며 베트남 곳곳에서 전쟁희생자에 대한 현충탑을 세워 놓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재향군인회 회원은 과거 프랑스와 전쟁에 참전했거나 월남전에 참전한 월맹 군인들만 재향군인회 회원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조직에 베트콩들이 재향군인회원 자격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베트콩들은 북부 베트남(구 월맹)의 희생물에 불과했으며 공산화 이후 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많은 간부들은 이중간첩죄를 뒤집어쓰고 우선 처형의 대상이 되었으며 그를 뒷받침하고 있는 베트콩들도 찬밥신세가 되었었던 것이다.

둘째 구 월남 정부를 상대로 반정부활동을 하였던 많은 반정부인사, 운동권 학생, 승려, 신부 등 반정부데모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은 공산화 이후 사회혼란죄를 뒤집어쓰고 반항하는 자는 처형시키고 나머지는 정신개조 수용소에 수감시켰다.
반정부 데모의 대표적 승려인 틱찌꾸앙 스님과 찬틴 신부는 정신개조 수용소에서 1993년까지 감옥 생활을 하였으며 틱찌꾸앙 스님은 다리가 굳어져버린 불구자가 되었다.

셋째 구 월남 정부군 군인들은 처형하지 않고 3-5년 동안 정신개조 수용소 생활 후 석방시켜 주었다. 오히려 통일과정에서 권총으로 자살한 사단장 등 고위 장성들을 영웅시하는 분위기였다. 그들은 성가신 존재로 보지 않았고 적당한 정신개조만 하고 석방하였고 베트남이 캄보디아 공산세력(크메르 루지)을 침공할 때 구 정부군 군인들이 전투의 주역이 되었다.

넷째 남부베트남 일반 사람들은 3가구 중 1가구는 정신개조 수용소에서 정신교육을 받았다. 그래서 남부베트남 사람들은 북부베트남 출신이라면 꾸벅 죽는 시늉을 하는 피지배자로 전락하였다.

여행객들에게 자유스럽게 보이지만 실제로 사회조직은 5호담당자 또는 8호 담당제로 묶어서 일거수 일투족 감시를 하고 있고 외국 여행객들의 행선지를 매일 체크하는 통제된 사회였다. 경찰을 포함한 모든 관리들은 북부사람이었고 그들은 남부 사람을 거칠게 다루며 군림하는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6.25전쟁 이후 김일성은 제일 먼저 남로당 박헌영을 간첩죄로 몰아 처형하고 박헌영을 따라 월북한 남로당 출신들을 전부 숙청한 사례도 있고 공산당의 속성을 보아 만약 한국이 공산통일이 된다면 공산베트남처럼 제일 먼저 숙청의 대상은 주사파 등 종북세력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 합리적인 생각이 아니겠는가?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