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다의 맹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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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다의 맹세
  • 홍정덕
  • 승인 2017.04.07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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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엘리아자르 벤 야이르가 이끄는 유대 저항군이 마사다 요새의 함락과 함께 전멸한 것은 A.D.73416일이었다.


마사다 요새의 성벽이 무너지고 요새가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지도자 엘리아자르 벤 야이르는 적의 노예나 포로가 되느니 자결할 것을 호소했으며, 이에 동의한 저항군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가족을 죽이고 다시 모여 열 사람씩 조를 짜서 제비뽑기를 통해 한 사람이 아홉 명을 죽이는 방식으로 죽음의 의식을 반복해서 치렀다.

최후의 한 사람은 전원이 죽은 것을 확인하고 성에 불을 지른 후 자결했다. 결국 마사다에 입성한 로마군은 936구의 시신만을 보게 되었다.

이로써 로마의 지배에 저항하는 유대인의 항거는 종결되었고 유대인은 조국에서 쫓겨나 각지를 유랑하며 구박과 차별, 멸시를 감내해야하는 2000년 간의 기나긴 숱한 학살과 추방을 당하는 고초와 고난의 삶을 살았다.

곡절 끝에 1948년 팔레스타인 한 모퉁이에 작은 나라 <이스라엘>을 세웠을 때, 이 나라의 장래는 정말 한치 앞도 구분할 수 없는 폭풍 앞에 켜둔 등불 같은 존재였다.


주변을 둘러싼 압도적인 아랍민족과 전 세계 이슬람의 집중적인 공세에 둘러 쌓여 있었고 나라의 존립을 위하여 국민 모두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총을 들어야했다.


이 과정에서 숱한 이스라엘 국민들이 조국을 위하여 죽어가는 한편 이스라엘은 서슴없이 팔레스타인들에게 피의 보복을 가하고 그들의 토지에 정착촌을 세우고 원주민을 추방하며, 군사력을 앞세운 혹독한 강압 통치를 강행했다

이로 말미암아 전 세계로부터 외교적으로 고립되고, 무역보복을 당하고, 국제연합을 포함한 국제기구의 규탄 결의를 받았지만 그들은 한 발짝도 양보하지 않고 일관되게 국가 수호의 의지를 다지고 행동해 왔다.

그들의 신속하고 효과적인 동원 체제, 핵무기를 포함한 정교한 무기개발, 섬세하고 정교한 정보수집 체계, 다양한 군종의 훈련방식 등은 전 세계국가의 모범이 되었다.

북한이 핵개발을 완성 단계에까지 끌어 올렸다고 한다. 이제 우리는 그들의 핵무력 공갈의 포로가 되는 현실에 직면하였다. 그러고도 사드 배치와 같은 최소한의 수단을 놓고도 이러 저러한 논리를 앞세워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나라 지키는 일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가 있다는 것인가? 왜란, 호란, 국치, 그리고 민족상잔의 참혹했던 사변이 모두 국론의 분열과 철저하지 못했던 대비태세에 기인하지 않았던가?

훈련을 마친 이스라엘 신병들은 부대배치 전에 반드시 <마사다> 요새를 찾는다. 그리고 이렇게 맹세한다. “다시는 이스라엘에 마사다가 없게 하라
그 결연한 국가 수호의 의지 위에 작지만 단단한 군사대국 이스라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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