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팬덤에서 집단주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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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팬덤에서 집단주의로?
  • 조용만
  • 승인 2017.03.1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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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만 논설위원·상명대 국가안보학과 교수

탄핵정국에서 시작된 한국의 사회상은 파워 팬덤으로 시작해 집단주의로 치닫는듯하여 사회적 불안감을 주고 있다.

팬덤(fandom)의 사전적 의미는 열광자, 광신자라는 뜻의 패너틱(Fanatic)세력의 범위를 뜻하는 접미어 (Dom)’의 합성어로, 특정 스타를 선호하는 팬들의 자발적인 모임에서 시작해, 가수나 배우 등 스타 개인을 넘어서 TV 드라마, 정치 등 다른 분야로까지 확산된 팬들의 움직임과 의식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최근 한국사회는 최순실 국정농단의 언론 폭로기사와 박근혜 대통령의 실정으로 인한 국회탄핵, 특검수사 및 헌재의 탄핵재판으로 이어지면서 각각 인용과 기각의 어느 한쪽을 요구하는 파워 팬덤을 형성했다.


파워 팬덤의 발원지는 촛불시위였다. 세월호 사건, 광우병 파동, 여중생 미군 장갑차 압사사고 등에서 나타났듯이 표현의 자유를 대중 집단적으로 대변했던 현대사의 한 모습이었으며 평화적인 시위로 세계인들이 부러워했던 문화였다.

그러나 이번의 촛불시위는 달랐다. 처음에는 단순히 박근혜 대통령의 실정과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대한 반감의 발로와 정유라의 특혜입학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에 대한 저항과 희화화로 어린이를 등에 업고 웃으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개입하여 소위 사이다 발언으로 인기를 끌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촛불시위는 하나의 물결이었지만 2개의 파로 나누어져 있었다.

1분파는 대통령의 지도력과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화가 나서 길거리로 뛰쳐나온 단순 온순파였고, 2분파는 정치권력을 지향하는 급진 좌파세력이었다.

그러나 시위의 횟수가 거듭되면서 발언과 피켓의 용어들이 도를 넘고 대선을 지향하는 정치인들이 이를 이용하면서 반대급부 현상이 일어났다. 인정이 많은 일부 시민들이, 대통령이 실정(失政)은 했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다!”며 대통령에 대한 동정심이 생기면서 태극기 집회가 시작되었다.

태극기 집회도 2개 파로 양분되었다. 1분파는 시비곡직(是非曲直)을 가리지 않는 박사모 회원 중심이고 제2분파는 이러다가 국가가 통째로 좌파 손에 넘어갈 것을 우려하는 순수 보수파가 참여하는 그룹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평화적 시위 그룹에 정치인들이 눈사람을 만드는 핵(core)의 역할을 하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2개의 촛불 시위파는 온순, 급진 성향과 관계없이 탄핵 찬성파로, 2개의 태극기 집회파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탄핵을 반대하는 그룹으로, 각각 파워 팬덤(power fandom)을 형성하였고 탄핵 정국 이후는 한 차원 넘어 정치 팬덤화 하면서 2개의 집단주의로 한국사회를 분열과 대립으로 몰아가고 있다.

정치 팬덤화와 집단주의가 문제라는 것은 1789년부터 5년간 진행되었던 프랑스 시민혁명시의 바스티유 감옥 습격사건, 루이 16세 처형, 혁명가들끼리 반대파를 처형하는 공포정치가 증명하였다. 그리고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파쇼주의나 독일 히틀러의 나찌즘, 일본의 제국주의 등이 개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선동하며 휩쓸리는 집단주의가 팽배하면서 결국은 국가를 파국으로 이끌었는데 우리가 그 길을 가려하고 있다.


34일 촛불시위파가 광주 대인동 롯데 백화점 앞에서 롯데는 사드부지 제공을 철회하라는 시위를 벌인 것이나 태극기 시위파가 헌재 앞에서 야구방망이로 퍼포먼스를 벌인 것은 집단주의의 폐해(弊害)를 보여준 것이다.

지동설의 진실을 알리며 죽은 코페르니크스나 위대한 스승이었던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신 것은 설령 잘못된 제도와 결정이라도 지켜야 혼란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촛불이 횃불이 되는 것도, 아스팔트의 시민혁명도 더 이상은 안 된다. 표현의 자유는 집단행동보다는 개개인의 투표로 보여주면 될 것이다. 그것이 흔들리는 대한민국을 바로잡는 진정한 애국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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