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애철수장부아(懸崖撤手丈夫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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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애철수장부아(懸崖撤手丈夫兒)
  • 홍정덕
  • 승인 2017.03.0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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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송나라 때의 야보(冶夫) 도천(道川) 스님은 본래 군졸이었으나 발심(發心)하여 큰 깨달음을 얻고 마침내 임제종(臨濟宗) 선맥(禪脈)의 큰 줄기를 잇게 되는데 이 도천 스님이 남긴 맑고 청량한 여러 수의 선시(禪詩) 가운데 여전히 많은 이들의 가슴에 향기로움을 끼치는 시가 하나 있으니 손 뻗어 가지를 잡고 오른들 무슨 기이함이 있으랴(得手攀枝未足奇) / 절벽에 매달린 손을 놓아야 비로소 대장부일세(懸崖撤手丈夫兒)’라는 명구(名句)가 있다.

우리 의정부시 도봉산 망월사의 주지로 20여년 주석하시던 일세의 명강백(明講伯)이자 욕쟁이 스님으로 많은 일화를 남긴 춘성(春城) 스님이 이 선시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은 입적계(入寂偈)를 남긴다.

보름달 뜬 청산에 한 그루 나무가 없고(滿月靑山無寸樹) / 절벽에 매달린 손을 놓으니 비로소 대장부일세(懸崖撤手丈夫兒)’
평생을 수행자로 일관한 스님이 열반에 들면 정중한 다비 절차를 진행하는 데 그 중 염습(殮襲)의식은 실제로 물로 씻는 것이 아니라 영구(靈柩)를 병풍으로 가린 채 그 앞에서 게송(偈頌)을 읊으며 상징적 의식을 행하게 된다.

그 중 손을 씻는 세수의 게송 마지막 구에 눈 크게 뜨고 청산을 보아도 한 그루 나무가 없고(滿目靑山無寸樹) / 절벽에 매달린 손을 놓으니 비로소 대장부일세(懸崖撤手丈夫兒)’라는 구절이 나온다.

모두가 죽음을 초월한 큰 가치를 추구하는 뜻과 용기를 귀하게 여기는 게송(偈頌)들이다.
백범 선생은 감옥에서 나와 황해도 안악의 안중근 의사의 부친 안태훈 진사댁에 머물 때 그 지방의 큰 유학자였던 고능선(高能善) 선생으로부터 도천 스님의 이 선시를 배웠고 이를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아 조국 광복에 매진하셨다.

거세어지는 일제 침략의 기세에 중국의 근거지들이 차례로 함락되어 가고 동지들은 이념을 따라 다투며 헤어지는 안타까운 상황, 그리고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맨 주먹의 현실 위에 시시각각 옥죄어 오는 죽음의 위협 속에서 백범 선생은 죽음에 의연하라는 이 시귀를 신념처럼 붙들었다.

그에게 이 시귀는 같은 구절이라도 다르게 해석되었다.
절벽에 매달린 손을 놓으니 비로소 대장부일세 (懸崖撤手丈夫兒)’가 아니라.’절벽에 매달린 손을 놓아라! 그래야 대장부니라 (懸崖撤手丈夫兒)’였다.

조국이라는 대의에 자신의 목숨 따위는 초개(草芥)로 여기는 진정한 애국자의 결의였다.
이제 2년만 있으면 100주년을 맞이하는 삼일절을 코 앞에 두고 째째하고 보잘 것 없는 자신의 정파적 이익에만 눈 먼 듯 보이는 우리나라 정치현실이 문득 가여워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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