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송나라 때의 야보(冶夫) 도천(道川) 스님은 본래 군졸이었으나 발심(發心)하여 큰 깨달음을 얻고 마침내 임제종(臨濟宗) 선맥(禪脈)의 큰 줄기를 잇게 되는데 이 도천 스님이 남긴 맑고 청량한 여러 수의 선시(禪詩) 가운데 여전히 많은 이들의 가슴에 향기로움을 끼치는 시가 하나 있으니 ‘손 뻗어 가지를 잡고 오른들 무슨 기이함이 있으랴(得手攀枝未足奇) / 절벽에 매달린 손을 놓아야 비로소 대장부일세(懸崖撤手丈夫兒)’라는 명구(名句)가 있다.
우리 의정부시 도봉산 망월사의 주지로 20여년 주석하시던 일세의 명강백(明講伯)이자 욕쟁이 스님으로 많은 일화를 남긴 춘성(春城) 스님이 이 선시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은 입적계(入寂偈)를 남긴다.
‘보름달 뜬 청산에 한 그루 나무가 없고(滿月靑山無寸樹) / 절벽에 매달린 손을 놓으니 비로소 대장부일세(懸崖撤手丈夫兒)’
평생을 수행자로 일관한 스님이 열반에 들면 정중한 다비 절차를 진행하는 데 그 중 염습(殮襲)의식은 실제로 물로 씻는 것이 아니라 영구(靈柩)를 병풍으로 가린 채 그 앞에서 게송(偈頌)을 읊으며 상징적 의식을 행하게 된다.
그 중 손을 씻는 세수의 게송 마지막 구에 ‘눈 크게 뜨고 청산을 보아도 한 그루 나무가 없고(滿目靑山無寸樹) / 절벽에 매달린 손을 놓으니 비로소 대장부일세(懸崖撤手丈夫兒)’라는 구절이 나온다.
모두가 죽음을 초월한 큰 가치를 추구하는 뜻과 용기를 귀하게 여기는 게송(偈頌)들이다.
백범 선생은 감옥에서 나와 황해도 안악의 안중근 의사의 부친 안태훈 진사댁에 머물 때 그 지방의 큰 유학자였던 고능선(高能善) 선생으로부터 도천 스님의 이 선시를 배웠고 이를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아 조국 광복에 매진하셨다.
거세어지는 일제 침략의 기세에 중국의 근거지들이 차례로 함락되어 가고 동지들은 이념을 따라 다투며 헤어지는 안타까운 상황, 그리고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맨 주먹의 현실 위에 시시각각 옥죄어 오는 죽음의 위협 속에서 백범 선생은 죽음에 의연하라는 이 시귀를 신념처럼 붙들었다.
그에게 이 시귀는 같은 구절이라도 다르게 해석되었다.
즉 ‘절벽에 매달린 손을 놓으니 비로소 대장부일세 (懸崖撤手丈夫兒)’가 아니라.’절벽에 매달린 손을 놓아라! 그래야 대장부니라 (懸崖撤手丈夫兒)’였다.
조국이라는 대의에 자신의 목숨 따위는 초개(草芥)로 여기는 진정한 애국자의 결의였다.
이제 2년만 있으면 100주년을 맞이하는 삼일절을 코 앞에 두고 째째하고 보잘 것 없는 자신의 정파적 이익에만 눈 먼 듯 보이는 우리나라 정치현실이 문득 가여워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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