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팔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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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팔년도
  • 홍정덕
  • 승인 2014.11.12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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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신한대학교 2캠퍼스 평생교육원 교무부장


터키 여행 중에 아무런 생각 없이 수도 앙카라에 있는 ‘한국공원’에 들렀었다. 작으마한 그 공원에는 ‘한국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었지만 실제 공원 안에는 우리나라 불국사의 석가탑을 본뜬 기념비가 하나 서있을 뿐 별다른 시설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 탑을 보는 순간 나는 전류에 감전된 듯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탑 모양의 조형물은 한국동란에 참전하여 전사한 터키 병사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1973년 우리 정부가 터키에 헌정한 기념물이었는데 그 기념물 에는 모두 770명에 달하는 한국전 참전 터키 전사자의 명단이 새겨져 있었다.

전사자가 모두 770명이나 된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더 충격적인 사실은 전사 당시 그들의 나이가 모두 20대 초반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그 전사자들 중에는 19세, 18세의 어린 병사들도 있었다.

그 기념비 앞에서 내가 무엇보다 부끄러웠던 것은 그들이 지켜준 나라에서, 그들이 지켜준 자유를 누리면서도 나는 그들의 그 희생과 노고에 감사하기는커녕 그들을 전혀 기억하지도 못하고, 그들을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전사하던 그 당시의 나이 19살, 20살, 21살, 22살, 낯선 나라에서 죽어가기에는 너무나도 젊고 아까운 그 청춘 앞에서 솟아오르는 눈물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문득 터키의 방문지마다에서 우리를 만나는 터키인들이 우리를 향해 “형제 나라에서 온 여러분을 환영합니다”하던 인사말의 참된 의미를 비로소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진심으로 터키에 고마웠다.

이제는 별로 많이 쓰이지 않게 된 말 중에 ‘쌍팔년도’라는 말이 있다. ‘내가 쌍팔년도에 논산 훈련소에 갔었을 때 말야’ 또는 ‘쌍팔년도에 군대있을 때 그 때는 너무도 춥고 배고파서…’라는 식으로 사용되던 말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들어보지 못한 말들이다 그들에게 쌍팔년도는 서울 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고전적인 의미의 ‘쌍팔년도’는 단기 4288년, 즉 서기 1955년을 의미한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폐허만 남은 한국, 모든 것이 모자라고 허물어져 생존 그 자체에 급급하던 어려운 시절이다. 그 어려운 시절 군대에 가서 3년 넘게 복무했던 우리의 선배들, 정말 배고프고 춥고 힘들었던 그 시절의 병영 생활을 통틀어 표현하는 말이 바로 ‘쌍팔년도’이고 그 때의 궁핍과 혹독했던 고난을 표현하는 숱한 에피서드들이 전해져 온다.

그 피눈물 나는 희생과 헌신으로 이 나라는 보존되었고 그 눈물과 피땀 위에 오늘날의 번영과 풍요가 건설되었다
우리는 그 선배들의 희생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그 피맺히던 고통의 시간을 견뎌 낸 그들의 헌신에 얼마나 고마워하고 있는 것일까? 역사를 잊은 민족은 망하다고 했는데, 그 쓰라린 고난의 시절들을 이렇게 쉽게 잊어도 되는 것일까?

천 만 명이 훨씬 넘는 최대 관객이 관람했다는 영화 ‘명량’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명량해전을 마치고 귀환하는 전선 맨 밑바닥에서 손바닥에 피가 흐르도록 노를 젓고 팔이 저리도록 활을 쏘아 대던 한 병사가 살아남아 온통 피땀에 젖은 채 내뱉는 말이다.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한 거 우리 후손들이 알랑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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