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가 없으면 소송에서는 사실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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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가 없으면 소송에서는 사실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 임현일
  • 승인 2014.10.07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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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일 변호사


먼저 중국 옛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칼럼을 시작하겠습니다. 중국 후한서 양진전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중국 후한 시기에 양진이라는 사람이 태수가 되어 창읍이라는 곳을 지나가면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는데, 여관에 창읍의 현령인 왕밀이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양진을 만났습니다.

왕밀은 이전에 양진에게 신세진 일이 있어서 고맙다는 표시로 금 10돈을 양진에게 건넸습니다. 이에 양진은 불쾌한 표정으로 받을 수 없다고 거절하였습니다. 그러자 왕밀은 그것은 뇌물이 아니라 사례의 표시라면서 주변에 보는 사람도 없는데 괜찮지 않겠냐고 양진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양진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하였는데, 이를 줄여서 ‘사지(四知, 넷이 안다는 뜻)’ 라고 하여 지금까지도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자네가 알고, 내가 알지 않는가!"

여기서 옛이야기를 꺼내어 본 것은, 바로 실제 소송에서는 ‘하늘이 알고, 땅도 아는 것’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소송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법관을 납득시킬 수 있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소송에서 어떠한 사실을 주장하는 원고의 말에 대하여 법관은 이에 대한 증거가 제출되지 않을 경우 주장사실의 진위를 의심하게 됩니다.

즉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면 소송에서는 사실로 인정받지 못합니다(단 당사자가 쌍방에 다툼이 없는 사실은 증거가 없더라도 사실로 인정받습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이전에 돈을 빌려 주었습니다. 그 후 다른 사람이 돈을 갚지 않아 그 사람을 상대로 소송을 하였는데, 돈을 빌려 줄 당시 둘 뿐이었고, 차용증도 작성하지 않았으며, 돈도 현금으로 지급한데다가, 소송에서 상대방은 전혀 돈을 빌린 사실이 없다고 부인을 해버렸습니다. 결국 돈을 빌려준 사람은 대여금 소송에서 승소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게 됩니다.

우리나라 민법에서는 계약의 체결에 있어서 낙성계약(諾成契約)이 원칙으로, 특별한 형식 없이 당사자 사이의 합의만 있으면 계약이 성립이 됩니다. 즉 구두계약도 가능한 것으로, 실제로 계약서나 차용증, 현금보관증 등의 아무런 문서 없이 둘 사이에서 계약이 체결되었다면서 소송을 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그러나 계약의 성립사실에 대한 문서가 없거나 신빙성 있는 증인 등이 확보되지 않는 경우에는 앞서 설명하였듯이 승소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할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일명 ‘사기방지법(Statute of frauds)’이라고 하여, 특정한 종류의 계약(보증, 부동산 계약, 일정 금액 이상의 물품판매계약)은 반드시 이에 대한 서면이 작성되어야 유효하게 성립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한편 우리나라도 최근 보증인 보호를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어, 보증계약에 있어서는 보증인의 기명날인 또는 서명이 표시된 서면으로 표시되어야 효력이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라는 오래된 법률격언도 있지만, 이를 뒤집어 해석하면 ‘계약은 깨어지거나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거래관계나 법률관계는 태생적으로 분쟁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쟁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고, 분쟁이 발생하였더라도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래행위나 법률행위에 있어서 증거를 충분히 갖추고, 당사자 사이에 약속한 사실은 계약서에 꼭 기재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

판결은 하늘이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것이고, 비록 ‘하늘이 알고 땅이 알아도’ 증거가 없으면 법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을 기억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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