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오늘 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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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오늘 만이라도
  • 한북신문
  • 승인 2023.12.2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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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전쟁은 이성과 논리로 타협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발발한다. 무엇이 옳고 누가 잘못되었는지를 따지고 확인할 수 없기에 전쟁은 그 어떤 경우에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폭력이며 범죄이다. 명분이 정당화되기에는 너무나도 값비싸게 무고한 인명이 희생되어야 하고 애써 일군 재산이 탕진되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인류가 가져야할 마지막 자산인 인간성이 다시는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로 철저히 파괴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1914년 독일군은 서부 전선 전체에서 영국, 프랑스, 벨기에군과 대치하며 이제까지 인류의 전쟁사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잔인한 대량 살상 도구인 기관총, 독가스, 탱크를 사용한 참혹한 참호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치열한 대치가 계속되는 동안 병사들은 각자의 참호에서 매 순간 전우가 죽어가는 치열한 전투를 치르며 계속되는 눈비에 하반신이 더럽고 차디 찬 물에 잠긴 채 졸음과 배고픔 추위와 함께 시시각각 휘몰아치는 죽음의 공포를 견뎌야 하는 극한의 상황을 견디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잠시 총성이 멈춘 사이 누군가가 작은 소리로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르기 시작했다. 문득 그 날이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작은 소리로 조용히 시작된 캐롤은 이윽고 병사 모두의 합창으로 변했고 그 노래 소리는 멀지 않은 적진에도 전달되었다. 그리고 그 기적은 순간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그 캐롤에 호응하여 적의 참호에서도 같이 캐롤을 부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마침내 서로를 향해 총탄을 퍼붓던 전선은 각각의 언어이지만 같은 음률로 부르는 성탄 캐롤로 하나가 되었다.

문득 누군가가 참호 밖으로 몸을 일으켰고 너나없이 병사들은 이윽고 참호를 벗어나 큰 소리로 캐롤송을 부르게 되었고 문득 상대방의 참호로 다가가 악수를 하고 서로의 부대 휘장이나 계급장, 군모 등의 소소한 기념품(?)이나 식량, 술, 담배 등 간단한 기호품을 교환하며 우정을 나눴다.

병사들의 이러한 매우 파격적인 일탈 행위를 코앞에서 지켜보던 부사관, 장교들도 대부분 분위기에 동참하여 상대측 지휘관과 만나 신사적으로 조약을 맺고 당분간 교전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때 양 진영 참호 사이의 무인지대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어 대치 중 수습이 어려웠던 시체들도 제대로 수습할 수 있었다.

어느 부대는 그 시체들을 치운 빈 땅에 축구장을 급조하여 팀을 나눠서 같이 축구를 즐겼다. 경기 결과는 3-2로 영국이 독일에게 역전패했는데 영국 측은 이를 명백한 오프사이드였다고 하지만 독일 측은 일고의 가치가 없는 주장이라고 했다는 양자의 기록이 있다.

영국군 병사 톰은 집에 보낸 편지에서 이때의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서로를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이, 수백 명이 넘는 그런 사람들이, 서로 웃어주고 악수를 나누기 시작했어!”

예수가 태어난 성지에서는 성탄 명절인 지금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서로를 죽이는 살인행위를 멈추지 않고 있다. 가장 낮은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 앞에 크리스마스, 오늘 만이라도 이 처절한 살육을 멈출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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