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당(捲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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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당(捲堂)
  • 한북신문
  • 승인 2023.09.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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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광해군 3년 4월19일자 왕조실록에는 당시 격론을 불러일으켰던 국왕의 임숙영(任叔英)의 과거 합격 취소 지시에 반발하는 다음과 같은 상소문이 실려 있다.

장령 신경락(申景洛)이 아뢰기를 “신이 삼가 생각건대 근일에 삼사가 번갈아 글을 올리고 대신이 차자를 아뢰고 있는데 공론이 제기되는 바에 국시(國是)가 정해질 것임은 신이 한두 마디 말을 할 필요조차 없이 분명한 일입니다. 다만 삭과하라는 명이 내려진 이상 언로는 장차 막힐 것이고 현사(賢士)의 관문(關文)이 비어버렸으니 사문(斯文) 또한 불행한 일입니다. 그리하여 사기가 꺾이고 군정(群情)이 답답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어찌 성명의 세상에 권당(捲堂)·공관(空館)의 변고가 있게 될 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조야가 허둥지둥 어쩔 줄을 모르고 분위기가 처참한 실정이니 어찌 한심스럽지 않겠습니까.”

국왕의 강력한 지시를 부당하다 여긴 성균관 학생 전원이 학교를 비우고 시위에 참가한 이른 바 권당(捲堂)이 발생한 것이다.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학교 교육이 중단된 이 사태를 정부와 나라 전체가 “조야(朝野)가 허둥지둥 어쩔 줄을 모르고 분위기가 처참한 실정”이러고 표현할 정도로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본다. 교육을 부모의 제1의무로 알아 온 우리 민족은 자신들의 삶 전체를 희생하여서라도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는 일에 전력을 다해 왔다. 스승 대접하기를 스승의 그림자조차 밟지 말라 일렀고 한권의 책 배우기를 끝낼 때마다 형편껏 푸짐한 음식을 마련하여 스승과 동료 학동들을 대접하였다. 스승 높이기를 부모, 국왕의 동렬에 두는 이른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는 배움을 대하는 마음가짐의 기본이었다. 미증유의 내전 상황이었던 한국전쟁의 그 참혹한 시기에 조차 공터 한 구석에 흑판을 걸어 놓고 그 염천(炎天) 한지(寒地)에서 수업을 진행했던 것이 바로 우리였다.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젊은 교사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른 오늘의 교단 상황은 참으로 민망하고 안타깝기 그지없다. 전해지는 교실의 상황은 차마 입으로 전해 듣기 조차 처참하다. 오죽하면 교사의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가! 이에 분노한 전국의 교사 수십만이 시위에 나섰고 마침내는 수업을 중단하겠다는 그들의 결의도 들린다.

찬반의 논란이 있겠으나 본질은 교단을 어떻게 바로잡아 정상으로 돌릴 수 있을까를 함께 걱정하고 바른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교권을 침해할 여지를 법적으로 만들어 준 여러 장치를 제거하고 우리의 다음 세대가 배우고 익히는 일에만 전력하되 무엇보다 올바른 가치관을 학력과 함께 키워내는 학교다운 학교, 마음껏 학생들을 사랑하고 아끼며 가르칠 수 있는 스승다운 스승들이 존경받는 교육 현장이 되게 하는 것, 이를 보장할 수 있는 전체의 공감을 이끌어 내도록 토론하고 소통하고 반성하는 것 그것이 전부이다. 학교를 비우고 공교육을 멈추는 것 그건 아니다. 한 번 멈추게 되면 유사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멈춤이 계속되는 사태가 이어질까 염려될뿐더러 더 중요한 것은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가르침과 배움이 중단되어서는 결코 안 되기 때문이다. 감정을 추스르고 상황을 냉정히 바라보며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사태 해결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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