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것에 대한 애착, 그리고 저장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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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것에 대한 애착, 그리고 저장강박
  • 한북신문
  • 승인 2023.06.06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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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식 의정부시 희망회복종합지원센터장 뇌과학박사.교육학박사
김충식 의정부시 희망회복종합지원센터장 뇌과학박사.교육학박사
김충식 의정부시 희망회복종합지원센터장 뇌과학박사.교육학박사

 

요즘은 이사철이다. 이제껏 여러 이유로 이사한 횟수를 세어보니 20여회나 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적으로 현재는 꼭 필요한 물건들만 남아 있다. 항상 그랬듯이 경험상 집을 이사할 때에는 많은 고민을 한다.

이사짐을 포장하는 과정에 특히 옷가지를 놓고 갈등을 한다. 하나하나가 기억이 있고 사연이 있다. 그러니 치운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1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옷가지들은 더 이상 가치가 없는 것으로 과감히 버려야 한다’라는 말이 정답인 것 같다.

요즘 아내가 손주들을 돌보느라 며칠씩 집을 비워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 내게는 냉장고 정리가 제일 어렵다. 도무지 뭐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앞에 있어 눈에 보이는 것만 먹다보니 한쪽 구석에 있는 것들은 아내가 와야 잔소리(?)와 함께 존재 자체를 알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엔 거짓말처럼 깔끔해 진다.

“이건 진짜 소중한 겁니다. 어딘가 꼭 자리를 정해서 사용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새로이 사무실을 세팅하는데 다른 곳에서 직접 시설을 운영하던 분이 신신당부를 한다.

그러나 새로 만들어 질 공간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버리기가 아까워 한켠에 쌓아 두었는데 이것이 전체를 어지럽게 한다. 결국은 우선 보이지 않는 곳에 비닐로 포장해서 보관하기로 했다. 내 물건들을 스스로 버리지 못하는 것을 보니 이것도 인간으로서 본능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행동이 지속되면서 물건들은 계속 쌓이게 되고 그만큼 활동공간은 줄어들면서 결국 스스로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환경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예전의 ‘수집증’으로, 현재는 ‘저장강박장애’, ‘저장강박증후군’, ‘강박적 저장증후군’이라 하면서 심한 경우 치료가 필요한 행동장애로 본다.

저장강박증은 그 원인은 확실하지 않지만, 가치판단 능력과 의사결정능력이 손상되었기 때문으로 판단한다. 어떤 물건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인지, 보관해 두어야 할 것인지 버려도 될 것인지에 대한 가치평가를 쉽게 내리지 못하고 일단 저장해 둔다는 것인데, 판단능력이나 행동에 대한 계획 등과 관련된 뇌의 전두엽 부위가 제 기능을 못할 때 이런 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좀더 전문적인 시각으로 뇌과학을 근거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전두엽의 기능은 분석, 예측, 추론, 통합적 사고 등인데, 하나의 사건에 노출되면서 왜곡을 불러오고 반복적인 행동으로 인해 올바른 행동이 불가능하게 된다. 만약 이와 같은 스스로의 규칙이 어긋나게 되면 편안한 뇌파(알파)는 당연히 나오지 않고 사리판단을 하는 각성뇌파(SMR) 또한 나오지 않는다. 이는 지속적인 스트레스로 이어지며 코티졸 호르몬의 과다 분비는 시상하부, 뇌하수체, 부신의 정상적인 축까지 무너지게 만들며 면역력이나 간 기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스트레스를 회피하려는 본능이 작동되어 왜곡된 행동을 지속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향후 ‘트라우마’로 남게 될 확률이 많다

필자가 속해있는 의정부시희망회복종합지원센터는 ‘주거환경개선사업단’을 운영한다. 이 사업단은 스스로 감내하기 힘든 시간을 경험하신 분(노숙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역 내 환경개선을 위한 청소와 방역활동을 하고 있다. 재작년 6월에 출범하여 그동안 사회복지시설과 침수가구, 홀몸어르신 포함 취약가정, 영구임대아파트, 의정부역 동부ㆍ서부광장, 공원, 고시원 등 다양한 영역에서 300여 차례 활동을 진행하였다.

그중 10여차례 진행한 저장강박세대 청소를 요청할 때가 가장 난감하고 죄스럽다. 보통 사람들로서는 상상조차 안가는 환경이 대부분이다.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와 빈 소주병 100여개, 그리고 군데 군데 오물과 대변들이 뒤섞여 코를 찌르는 악취 등 최악의 환경 속을 휘집으면서 묵묵히 주어진 일들을 하신다.

이곳에서 생활하신 분도 당연히 스스로 만든 규칙안에서 나름대로 리듬과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들만이 이 세상에서의 진실이고 정답이었을 것이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병원에서 퇴원하시면 안정을 찾고 평안하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두 시간 넘게 땀을 흘리며 막 청소를 끝낸 사업단원 중 한분이 독백처럼 읊조린다.

각자 나름대로 판단하는 기준은 다를 수 있고, 이를 풀어가는 방법도 각기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내가 정답이란 고정된 생각은 많은 오류를 만든다.

어찌 보면 평범하게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정답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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