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장엄(莊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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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장엄(莊嚴)
  • 홍정덕
  • 승인 2017.06.0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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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조선시대에 들어 단청(丹靑)이 일반화되었지만 단청을 시문할 수 있는 곳은 궁궐과 관아, 그리고 사찰에 한정되었다. 무릇 왕화(王化)를 발현할 수 있는 곳에만 단청이 허용되었다.

사찰에 단청이 허용된 이유는 삼국 이래로 확립된 불국(佛國)개념, 즉 불력으로 통치되는 세속 화엄(華嚴), 민토가 모두 불은(佛恩)에 젖는 이상의 세계를 세속에 구체화하려는 대승적 가치가 오랜 세월 근역에 자리잡아온 내력이며 이에 따라 <부처는 왕(佛卽王)> <왕은 부처(王卽佛)>의 개념으로 부처의 법전은 곧 왕의 법전과 동일시 되었던 까닭이겠다

단청(丹靑) ‘나무를 비바람과 병충해로부터 보호하는 칠()공사로 정의된다. 건물의 목재부에 도료를 칠하여 부식과 화재를 예방하는 동시에 벽사(闢邪)의 기능을 가지게 하였다.

이때 사용된 안료(顔料)는 천연의 채칠(彩漆)을 위주로 하였으니 예를 들면 검은색인 먹은 소나무 송진을 태운 그을음을 쓴다던가. 뇌록(磊綠)은 경상도 장기현에서 나는 초록색 암석을 가루로 만들어 쓰던가, 백색 안료는 조개껍질을 빻아 아교에 개서 사용했다. 물론 이 전통 안료는 아주 고가이어서 현재는 화학 안료로 대치되고 있다고 한다.

단청을 시문하는 기술자를 <금어(金魚)>라고 하며 이들은 오랜 숙련기간을 거쳐 불화를 그리는 기능을 취득한 승려들로서 이들을 초빙하여 시문하려면 그 인건비 역시 만만치가 않았다 사찰의 재정이 풍족하게 됫 받침 되지 않으면 단청공사는 엄두를 낼수 없게 된다.

처음부터 단청을 하지 못했거나, 단청을 하고 오랜 시간이 경과되어 칠이 모두 바래고 벗겨진 채로 그냥 내버려 둔 절집을 <백집>이라 부른다. 흔치 않으나 도처에서 백골집을 볼 수 있다. 그 중에 해남의 미황 대웅보전이 있다.

미황사는 한국불교의 해양 도래에 관련된 연기를 지닌 절이고 탬플스테이 행사가 발흥한 곳이기도 하려니와 이 절 대웅보전 뒤 응진전에서 바라보는 남해의 풍경이 아름답기로도 유명한 절이다.

멀리 가까이 다가서는 다도해의 여러 섬들과 그 섬들 사이로 내려앉는 태양이 베푸는 낙조는 그야말로 가슴을 설레게 하는 절경이다.

하물며 그 노을이 백골집인 대웅보전 전체를 귤빛으로 물들이게 되면 그 광경은 언어가 필요없는 무설(無說)의 설법(說法)이 된다.
잠시 머물며 그 황홀한 낙조에 취하였다가 쉬엄쉬엄 내려오는 길에 어둠 내린 대웅보전 안에 켠 촛불이 창호지 밖으로 번져나오는 그 고요로움을 눈물로 공감한 경험이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섰다. 이것 저것 헐어내고 새로 고치는 일에 분주하다. 그러나 새로이 단청을 시문(施紋)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민심이라는 바다위에 고요하나 웅장하게 번지는 노을 빛에 젖어 빛나는 백골집 같았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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