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년회와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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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년회와 세월호
  • 신희주
  • 승인 2015.01.02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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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주 논설위원

2014년도 며칠 남지 않은 때다. 조금 이르게 시작하는 사람들은 11월부터 신년이 되기 전까지 2014년을 보내기 위한 크고 작은 모임이 이어진다. 그 모임을 송년회 혹은 망년회라고 부른다.

망년회(忘年會)라는 단어는 일본어에서 왔다고 한다. 연말에 한 해를 보내며 그 해의 온갖 괴로움을 잊자는 뜻으로 베푸는 모임이기 때문이라 한다. 뭐 그리 잊을 일이 많아 날을 만들어 한 해를 기억하는 일보다 잊어야 하는 날로 명명한 것일까?

그만큼 사람들은 기억하고 싶은 것보다는 재빨리 떨쳐버리고, 새해로 도망가고 싶은 기억이 더 많은가 보다. 한 해를 돌아보면, 누군가의 탄생도 있었을 것이고, 사랑의 기약도 있었을 것이고, 축하할 성취와 기쁨도 있었을 것인 데도 말이다.

2014년도 분명히 기억하고 싶은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빨리 토해내듯 잊고 싶었던 너무나 가슴 아픈 사건. 그 중에서 우리의 거의 모든 것을 정지시켜버린, 우리 가슴 속에 침몰해 버린 4월 16일의 사건, 세월호의 아이들. 우리의 눈앞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을 바라만 보고 있어야 했던 무능과 자괴감에, 우리 스스로에게 던져져야 할 분노의 화살시위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싶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온갖 갑질논란, 관피아, 철피아 등 다양한 ‘-피아’의 확인, 간첩을 조작해 내는 공권력의 폭력과 국가권력의 개인사찰, 사유화, 민주주의의 실종으로 상징되는 정당해산판결. 이 중에서도 가장 집약적으로 우리의 오늘을 보여주는 사건은 역시나 세월호다.

지금까지 그 어떤 것도 분명히 원인규명 되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보여준 대처방식의 미숙. 그래서 보상일지 배상일지도 불분명한 정부의 대책. 그리고 또다시 반복된 안전사고들. 이와 같은 사건이 또다시 일어나도 역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탐욕, 무능력, 무책임, 무정부, 그리고 우리의 무심(無心).

과연 나를 위해 국가는 존재하는가? 우리는 가장 근원적인 문제에 직면했다. 우리는 우리가 상상하는 범위를 넘어 추락하는 대한민국을 어디까지 가서 보게 될까? 억압받거나 잘못되어도 힘없는 소시민이기 때문에 내 앞에 놓인 작은 현실에 더 집착해 저항하지 않고, 더 나빠지는 상황에 간접적으로라도 기여하고 있는 우리. 절대적 절망 속에 잠시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를 위로하고, 이순신 같은 영웅이 우리 안에 존재하기를 바랬다.

마약을 먹은 듯 그렇게 우리의 머릿속을 지워내면 그 뿐일까? 그리하여 우리 삶엔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가? 그냥 열심히 살기만 하면 된다고 아이들에게 말할 수 있는가?

너의 슬픔이 나의 슬픔이 되지 못하고, 너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지 못하면서 과연 우리에게 공생의 연대란 가능한 것인가? 그럼에도… 붙잡고 있는 한가지.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당신이 바로 희망이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것은 정치적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이야기다. 정치가 곧 우리의 생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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