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리당략
상태바
당리당략
  • 한북신문
  • 승인 2024.06.28 07: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 그런데 온 나라 사람이 전부 붕당에 참여해서 둘·셋·넷으로 나뉘어 200여 년의 오랜 세월을 지나도록 합하지 못하고 사정과 역순의 분별에 대해서 또한 끝내 말을 밝히고 논의를 세우지 못한 것이 바로 우리이다. 또 이것은 고금의 붕당을 통틀어서 더없이 크고 더없이 오래고 더없이 말하기 어려운 것이라 하겠다. 그 까닭을 생각해 보면 여덟 가지 원인이 있으니 도학을 너무 존중하는 풍토가 하나요. 명분을 너무 엄하게 여긴 것이 둘이요. 문사(文詞)가 지나치게 번거로운 것이 셋이요. 형옥(刑獄)이 너무 조밀한 것이 넷이다. 대간(臺諫)이 너무 준엄한 것이 다섯이요. 관직이 너무 맑은 것이 여섯이요. 벌열(閥閱)이 너무 성행한 것이 일곱이요. 평화로움이 너무 오래 지속된 것이 여덟이다.”

당쟁을 통렬히 비판한 위의 글은 <이건창(李建昌)>의 『당의통략(黨議通略)』 「원론(原論)」에서 인용한 것이다. 일본인들은 우리 역사를 왜곡하여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고 국운을 쇠망시킨 요인의 하나로 <당쟁(黨爭)>을 들었다.

그들은 조선 후기 정치의 한 면모인 당론(黨論)의 긍정적인 요소 예컨대 강력한 왕권을 견제하고 효율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한 붕당(朋黨) 정치라는 측면을 철저히 배격하고 이 당쟁을 예로 들어 우리의 역사를 분열과 다툼의 과정으로 매도한다.

강화학파의 일원으로 분류되는 소론(少論) 이건창(李建昌)은 당쟁의 원인으로 8가지를 들었는데 이 8종의 당쟁 원인은 지금의 정치판도에도 여실히 적용된다.

첫 번째 “도학(道學)을 너무 존중하는 풍토”는 곧 성리학 유일사상체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진보(進步)와 보수(保守)의 극단론을 지적하는 것이 되겠고 “명분을 너무 엄하게 여긴 것”은 당론에 어긋나는 다른 사고를 일체 인정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며 “문사(文詞)가 지나치게 번거로운 것”은 자기주장 만을 유일시하여 전개하는 궤변을 말한 것이다.

“형옥(刑獄)이 너무 조밀한 것”은 예컨대 문제가 되지 않음에도 소위 탄핵(彈劾) 등 극단적인 대처로 상황을 해결하려는 독단이며 “대간(臺諫)이 너무 준엄한 것”은 상대방을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는 독단이며 “관직이 너무 맑은 것”은 융통성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외통수 고집을 말하며 “벌열(閥閱)이 너무 성행한 것”은 한 당이 지나치게 많은 의석을 차지한 것이고 “평화로움이 너무 오래 지속된 것”은 오로지 자기들의 당리와 당략만을 생각하고 국가와 민생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을 의미하겠다.

누가 조선을 망치고 어느 붕당이 오류를 정착시켰는가?

이건창은 증언한다. “우리 국조의 당폐(黨弊)란 역대에 보지 못하던 것이어서 목릉(穆陵, 선조를 칭함) 을해(乙亥, 1575년)로부터 원릉(元陵, 영조를 칭함) 을해(1755년)에 이르기까지 180년 동안에 공사 간의 문자를 기재한 것이 십에 칠, 팔은 다른 일이 아니고 모두 남의 시비, 득실, 사정(邪正), 충역(忠逆)을 의논할 것 없이 대체로 당론에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옳고 그름을 명확히 판별하지 않고 당리 당략에 집착한 이들이 나라를 망쳤다고 확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안타까워 한다.

“소론 또한 화합하지 않는 이가 많았다. 그러나 특히 임금에게 건의하여 올리는 것이 사사건건 노론과 상반되자 노론도 뼈에 사무치는 원한을 품었다.” 혹자가 남구만(南九萬)에게 일러 말하기를 “지금 조금 뜻을 굽히고 노론의 한두 가지 일을 따르면, 노론과 소론이 다시 합해져 국사(國事)에 다행함이 될 것이다.”하였다. 그러나 남구만은 견고히 따르지 않았다. 지금의 정치판과 무엇이 다른가? 역사에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뽑힌 이들이 귀담아 듣고 눈 여겨 보아야 할 ‘오래된 오늘’의 모습이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