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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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장
  • 한북신문
  • 승인 2021.05.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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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신라시대로부터 조선시대까지 민족사와 함께 유지된 경로 의례에 ‘궤장’이 있다.

궤장은 ‘의자와 지팡이’를 말하는데 고위 공직자로서 연령이 70세에 이르면 그를 국가의 원로로 대접한다는 의미로 국왕이 이를 하사하는 제도였다.

의자와 지팡이를 내려주는 것은 국왕과 함께 정사(政事)를 논의하거나 국가의식을 집행할 때 국왕 앞에서 의자에 앉거나 지팡이를 짚을 수 있는 엄청난 특권을 허용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문헌에 따르면 삼국시대에는 김유신이 고려시대에는 강감찬·최충·최충헌 등이 이러한 특혜를 받았고 조선시대에는 아예 이 제도를 경국대전과 국조오례의에 명문으로 법제화하기까지 하였다.

그럼에도 궤장을 받은 원로대사신은 아주 드물어 홍섬·이원익·임당·이경석·권대운·허목·남공철·김사목·민치구 등 소수에 불과하였다. 1품의 품계에 이르고 나이가 70세 이상 된 원훈이지만 사정상 퇴직시킬 수 없는 자에게 예조의 계품을 거쳐 국왕이 궤장을 내리게 하였다.

궤장을 하사받는다는 일 그 자체도 본인에게는 일생일대의 영광이었던 데다가 거창한 잔치 즉 ‘궤장연’을 베풀어 주었으므로 더욱 더 큰 영광으로 인식되었다.

○… 임금이 말하기를 ,“영의정이 나이가 70이 넘어 대궐 뜰을 출입하는 데 걷기가 매우 어려워서 곁에서 부축을 한 뒤에야 다니게 되니 특별히 예우하는 방법이 없을 수 없다.”하고 해조에 분부해서 안석과 지팡이를 하사하였다. 예조에서 내외에 잔치를 내려주고 기로연도 겸해서 행하고 1등의 음악을 내려주는 일을 품지하니 임금이 허가하였다. 허적이 차자를 올려 사직하니, 임금이 권면하고 타일러서 허가하지 않았다. <숙종실록-숙종 6년 1월9일 기해>

이경석에게 궤장이 내려 궤장연이 열리던 날 구름같이 모인 백관들이 그의 영광을 찬탄하며 다투어 글을 지어 축수하는 자리에서 우암 송시열이 이른 바 비꼬는 시문을 짓고 서계 박세당이 그 이경석의 신도비문에서 이를 비판한 사건은 서인을 노론과 소론으로 나누는 기점이 되기도 하였다.

서당의 어린 학동들이 즐기던 ‘종경도’라는 일종의 주사위 놀이에도 그 최종 정상에 궤장과 기로가 표시되어 있었으니 궤장은 그만큼 모든 이들의 선망이 되는 사대부의 인생 목표이기도 하였다.

총리가 물러나고 장관들이 일부 바뀌면서 새로 지명된 각료들을 향한 벌써 이러저러한 인물평과 흠결이 오르내리고 있고 치열한 청문절차를 거치며 왈가왈부가 논의될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겨우 1년 남짓한 장관이 되려고 삶의 궤적 전체가 통째로 털리고 훼손되는 일에 굳이 나서지 않는다는 말이 민중에 회자되고 있다.

나이 들어갈수록 국가와 민족이 더 필요로 하고 존경하는 공무원이 아쉬운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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