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해도 좋은 원칙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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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해도 좋은 원칙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 한북신문
  • 승인 2021.04.2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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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과거의 사건, 역사는 현재에 실재하지 않기에 기억에 의존하여 그 사건을 이해할 수밖에 없고 사건과 사람에 대한 세월 저 편의 기억에는 경험자의 주관이 강하게 개입될 수밖에 없다.

공자가 편찬하였다고 전하는 역사책 <춘추(春秋)>는 춘추시대의 중국 역사와 그 시대의 사람과 사건을 모두 정(正), 즉 바름과 사(邪), 즉 그름이라는 가치로 양분하여 기술하였다. 이른바 ‘춘추필법’이다. 그리고 우리는 조선왕조 내내 이 춘추를 사대부라면 반드시 알아야하는 필독서로 공부하였다.

그 결과 우리는 모든 역사를 이 춘추필법의 논리와 가치로만 이해하려 한다.

장희빈과 인현왕후, 정도전(鄭道傳)과 정몽주, 이순신과 원균,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 세조와 사육신 등 무수한 사례에 나타나듯이 모든 사람을 칭찬받아야할 선인과 징계 받아 마땅한 악인으로 구분하고 심지어는 중국 역사조차도 ‘바른 유비(劉備)’와 ‘틀려 처먹은 조조(曹操)’로 나누며 전래되는 동화나 민담에서도 ‘심청이와 뺑덕엄마’, ‘흥부와 놀부’, ‘춘향이와 변학도’, ‘토끼와 거북이’를 대립시키는 상황에 익숙해지고 말았다.

<통감(通鑑)>, <보감(寶鑑)>처럼 ‘거울 감(鑑)’자가 제목으로 들어간 책들은 아예 과거의 사건에서 교훈을 얻는 것이 역사를 읽고 공부하는 유일한 이유라는 목적만으로 저술되었고, 심지어 편년체 사서인 조선왕조실록에 조차 사관과 편수관의 이른바 사론(史論)이라는 비평을 붙였다.

그들은 모든 사건과 인물을 자신들의 주관과 당론에 따라 정과 사로 나누어 평가하였고 이를 위해 패기 있고 바른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만을 가려 이른바 청요직에 배치하였다.

역사를 정오(正誤)로 나누고 상황을 자타(自他)로 인식하는 개념이 확산되어 온 이유이다. 이 춘추사관이 가지는 가장 큰 병폐는 사람을 전인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모조리 좋던가” 아니면 “무조건 나쁘던가”의 둘 중 하나다.

역사와 상황을 ‘바라보는 눈’을 식견(識見) 또는 사관(史觀)’이라 한다.

이 식견과 사관이 사실에 기초하지 않고 주관을 빙자한 편견에 치우친다면 이에서 비롯되는 문제는 자칫 심각해진다. 더군다나 권력자가 편견에 치우쳐 정책을 집행하고, 심판관이 편견에 기초하여 재판하며, 언론이 편견에 기반하여 기사를 구성한다면, 이는 사고가 아니라 재앙이다.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그 사건의 배후와 기저의 여러 측면을 확실히 파악하고 이를 종합하는 자세를 객관이라 한다. 객관이 상식으로 통용되고 객관에 기반하여 정책이 조율되고 집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객관은 철저히 원칙, 즉 법에 의거하여야 한다.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맹세한 대통령과 그의 정부가 헌법을 무시하고 소급입법을 제정하겠다는 결의를 듣고 문득 쓸데없을 수도 있는 걱정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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