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두뇌 전쟁을 본 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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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두뇌 전쟁을 본 소회
  • 한북신문
  • 승인 2021.03.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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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원기 논설위원·신한대 행정학과 교수
논설위원 권원기 교수.
논설위원 권원기 교수.

다소 오래전 상영되었던 초한지와 적벽대전 영화를 최근 다시 본 적이 있다. 두 번 이상 보니까 주요 인물들의 두뇌 전쟁이 점입가경이었다. 깊은 여운을 남긴 그들의 두뇌 전쟁은 단순히 승리만을 위한 것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인생에서 너 자신을 알라는 겸손함의 메시지를 던져준다고나 할까.

초한지 영화에서 항우의 책사 범증은 노쇠한 쓸모없는 늙은이로 쓸쓸히 사라진다. 그 이면에는 유방의 책사 장량의 전략이 숨어 있었다. 주군에게 버림받은 범증은 마지막으로 장량을 초대하여 바둑을 두자고 제안한다. 바둑을 두면서 범증이 한마디 내뱉는다.

바둑을 두다 보면 둘 다 죽는 패착이라는 것이 있다고 묘한 암시를 던진다. 그리고 항우에게 고별인사를 하면서 작은 편지 한 통을 건넨다. 만약 항우 본인에게 위험이 닥치거든 펼쳐 보라고 하며 쓸쓸히 뒤돌아선다.

이윽고 유방과 항우의 운명을 건 초한대전이 펼쳐진다. 결과는 항우의 참패였고 그는 자결로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반전이 일어났다. 항우가 죽고 난 후 천하를 걸머쥔 유방은 대장군 한신을 죽이고 충복인 장량마저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다. 왜 그랬을까? 영화는 이렇게 전개하였다. 범증이 항우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면서 건네준 편지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주군, 위험에 처해도 용기를 잃지 마시오. 곧 한신이 구해 줄 것이고, 장량도 도와줄 것입니다” 물론 터무니없는 내용이었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편지를 읽은 유방은 서서히 의심 병이 들기 시작했다. 자신보다 지략이 뛰어난 한신과 장량이 언제 반란을 꾀할지 불안하였다. 결국 한신은 죽고 장량은 쫓기게 된 신세가 되었다. 전에 범증이 말했던 둘 다 죽는 패착이 이것이었구나,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적벽대전의 조조도 대단한 두뇌 소유자였다. 적벽에서 오나라 군과 유비의 연합군에 대치하던 중 역병이 돌았다. 많은 군사들이 죽어 나갔다. 조조가 갑자기 명을 내린다. 배 위에 죽은 군사들을 가지런히 눕히고 값비싼 장식으로 치장하라고 한다. 그리고 배들을 오나라 군 진영으로 떠내려 보내었다. 조조의 예상대로 오나라 군은 앞다퉈 시체들 틈에서 값비싼 물건들을 취하였다. 볼 것도 없이 오나라 군사들에 역병이 돌고 말았다. 당황하던 중 제갈량과 주유는 기발한 지략을 발휘한다.

역병이 심하여 더 이상 연합전선을 펼칠 수 없다는 명분으로 유비군이 철수한 것이었다. 소식을 들은 조조는 자신의 지략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얼마 뒤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질 때 유비 군은 조조의 후방을 급습하였고 조조 군은 궤멸되고 말았다. 조조의 지략에 제갈량과 주유는 한바퀴 더 돌려서 역이용한 것이었다.

장량도 노련한 범증에게 밀렸고 당대의 간웅 조조도 젊은 제갈량과 주유에게 패하였다. 세상은 넓고 인재는 많다는 것이 실감 나는 대목이다. 아울러 나 자신이 꽤 능력 있다고 자평하는 사람들에게 겸손함을 일깨워주는 장면이 아닐까 한다.

우리나라는 내년 초 실시할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 후보의 신경전이 시작되고 있다. 다들 나름의 지략을 앞세우며 서로를 향한 두뇌 싸움이 치열할 듯하다. 그러나 자신이 장자방이나 조조라고 생각 든다면, 어딘가에 범증이나 제갈량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기에서 범증과 제갈량은 상대 후보가 아니라 국민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선거전은 눈에 보이는 상대 후보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국민의 매서운 눈이 더 버겁다. 그런 까닭에 후보자들은 자신의 명석한 두뇌에 의존하기보다, 국민의 입장에 선 진정한 마음으로 선거전에 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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