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랑천 꾀복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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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천 꾀복쟁이
  • 한북신문
  • 승인 2020.11.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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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생각해 보면 1950~60년대의 의정부는 서울 근교의 한적한 농촌이었다.

미군을 비롯한 참전 외국군 부대들이 여기저기에 주둔하고 있었지만 그 부대들 주변을 제외한 시 전역은 여전히 계절을 따라 색깔을 달리하는 농촌의 풍경이 가득히 펼쳐지고 있었다.

한 여름 중랑천에 장마가 지면 삼태기와 솜뭉치 횃불을 들고 풀 섶을 뒤져 한 깡통도 넘게 고기를 잡아 올렸고 추수 끝난 중랑천 너머 논고랑에는 미꾸리가 버글거렸다. 가을비가 그친 논가 풀 섶엔 젖은 메뚜기가 지천이었고 봄 오는 논바닥엔 삘기, 냉이, 마, 싱아 따위 먹는 풀이 두렁을 따라 개구리다리, 찔레순, 며느리밑씻개, 아카시꽃 같은 먹을거리가 그득하였다.

학교가 파하면 우리 꾀복쟁이들은 중랑천 물가에 모여 해지도록 첨벙거리며 물을 즐겼다.

우리끼리 그냥 ‘개울’이라고 부르던 그 중랑천 뚝방에는 미군 군복들을 검게 염색하는 염색통들이 즐비하였고 그 아래 탯돌에서 우리네 어머니들은 빨래비누를 풀어 한 버치 가득 빨래를 헹구어 풀밭, 모래밭에 널어 두셨다.

그 건너 너른 백사장 한 켠에 활터가 있어 또래 중 누군가는 한량들이 쏘아댄 화살을 주어 모으는 알바를 하기도 했었다.

송산다리 건너자마자 바로 좌편, 그리고 포천다리 건너 바로 좌편에 제법 큰 유수지(留水池)가 각각 하나씩 있었는데, 포천다리 건너 유수지(留水池)의 유독 차가운 물에서 개헤엄을 치다가 무성했던 <줄>을 뽑아먹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그 개울 중랑천으로 흘러드는 샛 도랑을 뒤지면 예쁜 버들붕어를 쉽게 잡을 수 있었는데 이 버들붕어는 물을 자주 갈아주지 않아도 오래 살아 학교의 환경미화 작업에 인기 아이템이었다.

그 어려운 시기에도 학급에는 유리병에 버들붕어를 담아 놓는 정도의 센스는 있었었다. 물가에다 옷을 벗어 놓으면 누군가 집어가니까 우리는 나음대로 꾀를 내어 모래밭에 옷을 파묻어 두고 놀다보면 그 옷 묻은 곳을 잊어버려 모래밭 여기저기를 한 나절이나 헤 뒤집곤 하던 기억도, 물결 따라 떠내려가는 고무신을 건지려 지금의 호원동 언저리까지 뛰어 따라가던 기억도 마치 어제 같다.

중랑천이 오염되어 시궁창이 되고 그 개울 주변 가득 고층집들이 들어서면서 아름답던 중랑천의 추억 위에도 온통 시커먼 먹칠이 되어 버리더니 어느덧 다시 물은 맑아지고 주변에 벚나무들이 울창한 멋진 공원으로 변모하였다. 고맙고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어린 아이들 그 누구도 중랑천 물에 들어가 텀벙이며 놀지 않는다. 손바닥 더 큰 잉어들이 떼 지어 다녀도 아무도 삼태기질 하지 않는다. 모두들 그냥 멀리 바라볼 뿐이다.

이제 우리들 그 꾀복쟁이들도 내년이면 칠순을 맞는다. 그나마 중랑천의 찬 물에서 개헤엄을 치던 벗들도 몇 남지 않았다. 세월 흐르듯 흘러가 버린 중랑천 모래톱위에 갈꽃이 무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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