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서 전사한 젊은 이방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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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서 전사한 젊은 이방인들
  • 한북신문
  • 승인 2020.09.2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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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내 또래 1950년대 생들에게 특히 겨울은 “추워도 너무 추웠다”는 기억만 남아있다. 하긴 오죽했으면 <쌍팔년도>라는 수식어가 있을까? 삶이 유독 퍽퍽하고 힘겨웠던 시절을 묘사할 때 쓰는 말이다. “내가 논산훈련소에 갔을 때가 바로 쌍팔년도였거든!”하는 따위의 설명어로 쓰이는 말이다. 요즘 세대들에게 쌍팔년은 ‘서울올림픽’이 성공적으로 개최된 자랑찬 해로 기억되겠지만 지금 말하는 쌍팔년은 단기 4288년 그러니까 서기 1955년을 일컫는다. 전쟁이 끝나고 맨 손으로 국가재건을 시작하던 시기, 모든 산업이 파괴되고 한창 일할 수 있는 젊은 청년 100여만이 전사하거나 전상 장애인이 된 상황에서 국민들의 삶은 정말 어렵고 힘들었다.

그때 국민학교 학급의 겨울나기는 물동이만한 난로 하나가 전부였는데 아침 수업 전에 주번이 배당받아온 조개탄은 다 타는 데 겨우 한두 시간이 고작이었다. 나머지 시간은 책걸상을 포함해서 주변의 나무란 나무는 모조리 구해서 때는 수밖에 없었고 우리는 발을 동동 구르며 그 추위를 견뎌야 했다. 일제 강점기부터의 남벌로 주변의 산이란 산은 모조리 허연 민둥산이었고 우리는 그런 산들을 ‘빡빡산’이라 불렀었다.

내복을 두 겹 씩 껴입고 양말을 여러 겹으로 신고 털신을 신고도 우리는 추위에 떨었다. ‘다후다’라고 부르던 나일론 옷감의 윗옷을 입고 등교하면 난로 불티에 그 옷 여기저기가 타서 구멍이 마구 뚫리던 기억도 어제처럼 생생하다.

그 혹독한 추위를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나라 한국을 지키려고 달려왔던 UN 참전군인들 역시 산꼭대기와 깊은 계곡, 훵 뚫린 평지 숙영지에서 견뎌내야 했고 그리고 거기에서 피 흘리며 죽어갔다.

<패티, 페이지>의 세계적인 히트곡 ‘당신의 결혼식에 갔었어요(I went to Your Wedding)’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어느 군인의 아픈 실화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터키의 수도 앙카라의 ‘한국공원’에서 그 곳에 세워져있는 터키의 ‘한국전쟁 참전비’에는 한국에서 전사한 터키군 721명의 이름, 생일, 전사일시가 새겨져 있었다. 그저 지나치려다가 우연히 한 병사의 나이를 계산해 보았더니 21살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모두 19살, 20살, 21살, 22살 그렇게 그들의 나이를 짚어가다가 나는 꺽꺽 울고 말았다.

빛나는 젊음을 우리의 자유를 수호하는데 기꺼이 바쳐 준 그들이 너무 너무 고마웠다.

북한에 비상상황이 발생했을 때 우리 의사를 파견하는 법이 국회에서 발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정작 우리의 자유를 지키며 죽어간 우방의 젊은이들에게 정말 한번이라도 감사한 적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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