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5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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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5주년
  • 한북신문
  • 승인 2020.08.2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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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규 논설위원·여행작가

 

올해는 광복 75주년이 되는 해이다. 하지만 해방과 동시에 국토는 남북으로 분단되고 좌우익 간 이념 갈등도 함께 대립되어왔다.

이러한 갈등은 우리가 대한민국의 모체가 된 임시정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북한 정권의 주역이 된 동북항일연군과 조선의용군(팔로군)이 중국영토회복을 위해 일제와 싸운 것이 조선독립과 북한 인민을 위한 것이었다는 착각에서 비롯되었다.

일제의 무조건 항복으로 조국이 해방되자 소련의 지원 하에 38선 이북에 김일성 공산정권이 들어섰다. 이와 함께 스탈린이 허가이, 남일 등 고려인을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케하였고 건국 후 김일성은 마오쩌둥에게 조선의용군의 후신인 중국인민해방군 3개 사단을 지원받아 북한에 인민군을 창설하였다.

국내파(남로당) 공산당 박헌영은 월북하여 김달삼으로 하여금 1948년 총선거 전 제주4.3사건과 여수, 순천군사 반란을 일으켜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방해하였다. 하지만 이들이 그 해 말 토벌되어 6.25때 20만 당원의 봉기가 없자 김일성은 박헌영을 미제 스파이란 구실로 숙청하였다. 이후 1956년 8월 종파사건으로 김일성은 박창옥 등 소련파와 6.25전쟁때 신속한 기동력으로 충청, 전라지역을 석권하고 인민재판과 주민학살로 악명을 떨친 6사단장 방호산과 김두봉 등 인민군의 모체가 된 조선의용군 출신의 연안파를 제거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김일성은 북한에 공산당 1당 유일 독재국가체제를 확립하였다. 즉 코민테른에 의거 1국가 1당만 인정하는 공산국가 건설에 항일투쟁한 공산주의자들을 부려먹고 숙청한 것이다. 이로써 동북항일연군이 일제와 싸운 것이 북한인민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의 만주지역 회복과 김일성의 1인 장기집권 공산당 독재를 위한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광복 75주년 되는 이 시점에 우리는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싸우다 산화하신 순국선열들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반쪽만 되찾은 광복보다는 북한 주민도 함께 자유로운 삶을 누리는 완전한 통일을 지향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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