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인 여산 송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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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인 여산 송씨
  • 한북신문
  • 승인 2020.08.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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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세계 역사에 단 한 명, 정말 특이한 경력을 지닌 여인이 있다. 자료는 그 여인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문희공 홍언필은 중종 때 영의정을 지냈으며, 그의 아들 홍섬 역시 선조 때 영의정을 세 차례나 중임하고 청백리에 뽑혔다. 홍언필의 부인 여산 송씨는 중종 때 영의정을 지낸 송질의 딸이다’.

요즘 시사로 바꾸어 말하면 아버지도, 남편도, 아들조차도 모두 국무총리를 지냈다는 말이니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르고 출가해서는 남편을 따르고 노에는 아들을 따르라는 이른바 삼종의 도리가 무색한 무척이나 영광된 일생을 살았다 하겠다.

야사는 그 여인의 어린 시절 그녀는 모친의 성정(性情)을 그대로 물려받아 꺽달지기가 그지없었다고 한다. 한생을 공처가로 살아 온 아버지 송질은 장차 자신의 딸이 저 성품을 그대로 지닌 채 시집간다면 그 후 자신의 사위가 겪을 고초가 눈에 보듯 뻔하여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는데 하루는 우연히 자기 집안 비녀(婢女)를 마음에 두고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대낮에 거리낌 없이 자신의 집에 드나드는 동네 청년 홍언필을 보고 그 담대하고 의연함에 이는 하늘이 주신 사위라고 여겨 혼사를 추진했단다.

육례를 거쳐 초례를 마치고 신방에 든 신부는 그제야 자신의 신랑이 바로 그 뻔뻔한 동네 한량임을 알아보고는 초야도 거부한 채 바로 퇴출해 버렸고 신랑은 의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태연히 집을 나가 버렸다. 신랑의 못된 행실을 초장에 꺾어놓기로 마음먹었던 신부였으나 고관 사대부가의 딸로 이미 진행된 결혼을 취소할 수는 없으니 기일을 두고 사죄하고 돌아오기를 여러 차례 종용하였으나 신랑은 이미 당한 망신이니 오히려 신부가 꺽달진 그 성격을 내려놓고 무릎 꿇어 빌기 전에는 절대 안 돌아간다고 버티었다.

그렇게 수년이 지난 후 문과 장원에 입격한 수재가 3일 유가(遊街)를 벌이며 영의정 송씨 댁에 인사차 들렀는데 문틈으로 내다보니 그는 바로 자신이 쫓아 낸 자기 신랑이 아닌가? 이제 출세 길에 든 신랑이 과거에 당한 망신을 구실 삼아 결혼을 취소할 수 있다는 급한 상황에 직면한 모녀가 마침내 무릎 꿇고 잘못을 사죄하며 유순한 신부가 될 것을 다짐하자 비로소 신랑은 그녀를 신부로 다시 맞이하였고 이후 더 없이 금슬 좋은 부부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여성의 인권과 자존이 온전히 스스로의 역량이 아닌 성리학적 가치와 윤리에 따라 결정되던 옛 시절의 이야기로되 아직도 이상적인 부부관계를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되는 이야기이며 거기 더하여 그녀의 친정아버지 영의정 송질의 무덤이 양주 은현면에 있어 우리에게는 더욱 살갑게 느껴지는 우리 고장의 일화이기도 하다.

이제 세월이 흐르고 우리 모두는 가치체계도, 윤리기준도 전혀 바뀌어 버린 새로운 세대에 살고 있다. 과거의 우리 경험과 인식, 삶의 형태는 이제 근본적인 점검과 함께 새로운 모색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1000만 서울특별시 시장의 극단적인 선택이 우리에게 전혀 특별한 의미로 실감나게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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