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으면 안 되는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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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으면 안 되는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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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1.06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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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올리버 크롬웰이 주도한 영국의 청교도혁명은 국왕을 처형하고 시민이 정권을 잡는 이른바 혁명(Revolution)’에는 성공하였으나 국민들에게 청교도의 가치와 생활규범을 유일선(唯一善)으로 강요하는 또 하나의 절대 권력으로 변질됨으로서 결국 왕정이 복고(復古)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다시 왕으로 즉위한 찰스 2(Charles II)가 후사(後嗣)없이 사망하자 그의 뒤를 이을 동생 요크 공작 제임스의 종교가 문제가 되었다. 그는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聖公會)의 신자가 아닌 천주교도였던 것이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종교와 관계없이 제임스의 왕위계승을 인정하자는 측과 그가 성공회로 개종하지 않는 한 왕위계승은 불가능하다는 측으로 영국의 의회는 양분되었다.
왕위 계승을 인정하는 측은 이를 반대하는 자들을 가리켜 휘그(Whig)’라고 불렀는데 스코틀랜드어로 모반자’, ‘말 도둑이라는 의미였다. 반대로 왕위 계승에 반대하는 측은 인정하는 측을 토리(Tory)’라고 불렀는데 이는 아일랜드어의 ‘toraidhe’에서 유래한 속어로 불량혹은 산적이라는 뜻이다. 서로를 당시 가장 비도덕적이고 범죄자, 그것도 잉글랜드의 식민지 말로 불러대며 조롱하였던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상대방이 자신들을 부르는 그 멸칭(蔑稱)을 당의 공식 명칭으로 오래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물론 후에 토리 즉 산적들은 보수당으로, 휘그 즉 말 도둑들은 자유당으로 당명을 바꾸며 오랫동안 상호 교차 집권하게 되기는 하지만. 이들이 서로 극렬히 대립하면서 각자가 소지한 칼로 상대방을 찌를 가능성이 제기되자 영국의 의사당 안에는 약 3m 거리의 붉은 선이 그어졌다.

어떠한 경우에도 의원들은 자신들의 반대당이 위치하고 있는 맞은편을 향하여 이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 이 선을 넘는 경우에는 자신의 소속당에서 상대방 당으로 당적을 변경할 경우뿐이다. 영국 의회가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로 남는 중요한 장치 중의 하나이다.
산적들과 말도둑들은 치열하게 다투고 싸웠지만 상대방을 청산되어야 할 <적폐(積幣)>로 취급하지는 않았다. 가장 단적인 예가 영국의 의회 민주주의가 또 다시 위기에 처했을 때 그들은 단합하여 <명예혁명(名譽革命)>을 이루어 냈고 보수당의 지도자 디즈렐리와 자유당의 지도자 글래드스톤은 서로를 맹렬히 비난하곤 하였지만 동시에 진정으로 상대방을 존경하고 그 식견을 인정하였다.
경제와 안보, 외교의 전반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한다. 모두가 피부로 느끼는 이 위기 앞에서 국민은 정치지도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적폐청산’, ‘진보꼰대’, ‘토착왜구처럼 정치의 동반자를 향하여 거침없이 내뱉어 대는 이 섬뜩한 단어보다 더 두려운 것은 이 단어를 신념삼아 정말로 상대방을 청산해야 할 적으로 알고 이를 행동에 옮기는 요즈음의 작태이다.
이제라도 우리 국민이 나서서 우리 정치판에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단호히 그어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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