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여사(趙女史) 송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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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여사(趙女史) 송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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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7.26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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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

양주시 은현면 선암리의 <은현초등학교> 교정에는 낯선 비석 하나가 서있다. <조여사낭자(趙女史娘子) 송덕비(頌德碑)>로 음각(陰刻)1m 남짓의 이 작은 비석의 건립 연도는 소화(昭和) 10 몇 년인데 앞의 1자는 분명하나 뒤의 숫자는 파손되어 정확히 읽히지 않아 건립 연도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다.

비문(碑文)은 비석 전면(前面)에만 나타나는데, 표제(表題)문 오른쪽에 작은 글자로 그녀가 남긴 업적이 명문(銘文) 형식으로 나타나나 비문의 마멸이 심하여 판독이 어렵고 왼편에 새겨진 건립관련 기사에 일시(日時)와 함께 <은현면민 일동>이라는 설립주체를 기록하고 있다.
현재의 은현초등학교는 6학급 96명의 각 학년 학생과 유치원생 6명을 합하여 모두 100명이 재학하고 있고 설립연도는 193591일로 금년에 개교 94주년을 맞이 한다. 이 학교는 일제강점기에 1개면 1학교 설립 정책에 따라 당시 양주군에서 최후로 개교된 학교였다. 은현면에만 교육시설이 없는 상황을 걱정한 당시 면민들은 적극적으로 학교설립을 추진하였고 당시 면장인 한정석의 주도로 모금에 앞장서서 학교 건립기금을 모으며 학교 설립을 간청하게 된다.
1934824일 동아일보에 실린 해당 기사는 다음과 같다. 보교설립(普校設立)코저 면민대회 개최(面民大會開催) 양주군 은현면민(楊州郡隱縣面民들이 기본금(基本金) 삼천여원 (三千餘圓) 모집(募集) (덕정(德亭)) 한점석 면장
이와 같은 주민들의 노력의 결과 은현면에 <은현공립보통학교> 교사가 낙성된 것은 1936519일이었다. 당시의 동아일보 기사를 보자.
양주군 내에도 11교 완성, 은현공보교 낙성식으로’ 1935년은 소화(昭和) 10년이다. 따라서 학교 개교일을 1935년으로 잡고 건물낙성을 1936으로 잡으면 송덕비 비문에 나타나는 소화 십 몇 년이라는 송덕비 건립일시는 조낭자라는 여인이 학교 건립기금을 쾌척한 1934년 이전의 사건을 몇 년 후에 비석을 세워 기념하였다고 보여 진다.
조낭자(趙娘子)에 관하여는 해당 기사가 본인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나 1921년 판 <조선은행 회사요록><약종무역(藥種貿易)>이라는 의약회사의 주주로 등재되어 있어 여인으로서는 상당한 재력을 지녔던 것으로 보이고 해방 이후 반민특위에서 맹활약한 김명동(金明東) 제헌의원 관련 사건에 연루되어 벌금형을 받은 것으로 보아 정치계에서도 민족정기 수호활동에도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한 때는 동두천의 상패초등학교를 분리할 정도로 교세가 강했던, 백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학교의 교정에 쓸쓸히 서있는 조낭자 여사의 송덕비가 안쓰러운 것은 그녀의 헌신을 상세히 알지 못하는 후학들의 무관심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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