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한반도 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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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한반도 안보
  • 허일회
  • 승인 2016.09.2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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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일회 자문위원. 신한대학교 초빙교수

북한의 5차 핵실험으로 한반도의 안보 상황은 위험해 졌다. 북한의 5차 핵실험이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는 명료하다. 핵 공격이 말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반도는 체제 전쟁을 하는 유일한 곳이다. 문제는 김정은 정권 내부에 그 누구도 제동을 걸 수 있는 인물이 없다는 점이다. 광인의 손에 가장 위험한 핵무기가 쥐여 있는 상황이다.


북한을 보는 우리 국민의 시각은 '민족'이다. 체제 전쟁의 상대라는 인식보다 같은 '민족'이라는 관점에서 보았기에 북한 체제에 대한 냉정함과 단호함을 잃어버렸다. '같은 민족인데 설마 우리를 공격 하겠나'라는, '북한의 핵은 우리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는 요설까지 등장했다.

세계 역사를 살펴보면 체제 경쟁이 평화통일로 끝난 사례는 없다. 가까운 역사만 봐도 베트남은 혹독한 전쟁을 치른 끝에 자유 진영이 공산 체제로 흡수됐다. 독일은 공산주의 체제의 몰락이 있었기에 동독을 자유 체제로 흡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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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에 둘러싸인 반도이기에 북한 문제는 원래부터 국제화될 소지가 아주 강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 주도로 북핵문제를 풀어가기를 원했다면 북한에 대해 우리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렛대를 키워 왔어야 했다. 우리는 그것을 놓쳐버렸다. 국가의 역량을 키우지 못해 거센 외세의 물결에 휩쓸리고 있는 작금의 모습이 구한말이나 1945년 분단 당시나 지금이 다를 게 없다는 점이 가슴 아프다.

625전쟁 초기 미 CIA 남침 이어 중국 개입도 빗나간 오판 사실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1950625일 전쟁 전 미국 CIA는 전선에서 올라오는 북한의 남침 징후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첫째, 전략적 차원에서 미국이 소련의 일본 침공, 중공의 대만 침공에 우선순위를 더 높게 두었기 때문이다. 둘째, 당시 CIA의 정보 분석요원 1000여 명 중 한반도 담당 요원은 단 3명뿐이었다. 6·25전쟁 발발전 CIA의 눈과 귀 역할인 켈로(KLO: Korea Liaison Office)부대는 북한의 군사력 증강과 심상치 않은 부대 이동에 관한 첩보를 무려 2800여 회나 보고했으나 이를 무시했다.


왜 이렇게까지 심각한 오판을 했던 것일까? 심리학에서는 이를 확증편향(confirmatory bias)이라고 한다.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무시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우리는 북한의 핵위협을 제대로 인식하여 의연하게 대처하되 북한 핵문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해야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 그러면서 우리 군의 대응체계를 서둘러서 앞당겨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북핵문제는 대한민국의 생존 문제임을 국민들이 명확히 인식하여 다른 나라가 해결해 줄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우리가 해결하려 하지 않으면 그 어떤 나라도 우리 국가의 미래를 책임 질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북한의 거듭되는 핵실험은 우리국민을 만만하게 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제까지의 의존적이고 의타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창조적인 발상의 전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 다음으로 북핵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이라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우리의 강한 힘과 구가의 역량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 김정은 체제에 대한 단호함과 대한민국 이념에 대한 확신이 국민 모두에게 확산되어 공감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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