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북신문,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신지선 논설위원

한북신문의 이전개소식이 지난 25일에 있었다. 많은 분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눈에 띄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덕담 삼아 주고받은 이야기 중에 한북신문의 구독층을 늘리기 위한 방법에 관한 것도 있었다. 그러나 종국에는 ‘요즘 사람들은 신문을 읽지 않는다’라는 전제가 한북신문의 구독자확대를 저해하는 요소라고 얘기가 되었다. 요즘 사람들이 읽지 않는 것이 비단 신문뿐이겠는가? ‘읽는다’는 행위자체가 ‘본다’로 치환된 것을 이미 오래 전의 일임을 잘 알고 있다.
더 나아가 publishing의 모든 분야에서 해마다 독자층은 줄고 있다. 책을 출간하는 출판의 경우에도, 종수는 늘었으되 판매 부수는 현저하게 감소해 출판계는 해마다 최악의 불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파주 인쇄소의 경우, 단행본의 인쇄 일이 매일에서 격일로 바뀌었다고 들었던 것이 벌써 지난 가을의 이야기다.
구한말 외국선교사들의 눈에 비친 조선의 사람들은 그 버거운 삶 속에서도 집에 책 한 권씩은 다 갖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게 여겼다고 하는데 말이다.
엄밀히 책은 단순히 정보를 얻기 위한 매체가 아니다. 상당히 호흡이 긴, 생각의 시간을 오래 갖고 읽는 종류의 매체다. 이것을 단순한 정보의 나열로 엮는다면 독자의 시선을 붙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요즘 세상의 독자들은 너무 바쁘고 또한 게으르다. 독자적인 듯하지만, 실상은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사업으로서 출판업을 생각하는 것을 떠나서 이런 사람들이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을, 이런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 나갈 앞으로의 세상이 걱정스러운 이유다.
그렇다고 요즘 사람들이 세상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무지하지는 않다. 정보에 접근하는 방식은 개인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더 빨라졌다. Fact 여부를 검증할 수 있는 단계가 보완된다면 뉴스 혹은 정보를 얻기 위해 추가적인 출판매체가 필요하지 않다. 어느 언론인의 넋두리처럼 언론인보다 일반인들이 더 빨리 뉴스를 아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트위터를 통한 확산방식은 기존 언론매체가 따로 필요하지 않음을 재확인하게 된다. 그러니 아침마다 문 앞에 떨어져 있는 신문을 주워 드는 젊은 사람들을 더 찾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요즘 세태를 한탄하는 것으로 대책 없는 넋두리로만 끝낼 것이 아니라 한북신문의 설 자리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각 매체들마다 특성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어떤 감언이설로 사람들을 구워삶아 구독자를 늘릴까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지만, 어떤 성격으로, 어떤 논지로, 무엇을 독자들에게 전달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정체성을 갖춰 지켜나가는 일에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이제 신문은 뉴스를 제공하는 기능으로서는 이미 자리를 잃었다. 발간하는 빈도에 따라 독자들에게 꼭 전달되어야 하는 우선순위의 정보와 그 근거들을 뒷받침하는 심도 있는 필력, 이것이 핵심이지 않는가 한다. 요즘은 자기가 갖고 있는 칼이 무디다고 생각을 하는 기자들보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경우가 더 많은 듯하다. 언론인은 스스로의 칼이 어떤 상태인지를 살펴보아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