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래각에서 본 대한민국의 안보

김현규 논설위원

2026-10-28     한북신문
김현규 논설위원

최근 의정부 농협에서 주최한 중국 산둥반도 대의원 역사문화탐방을 다녀왔다.

칭다오에서 옌타이로 이동하여 봉래각을 방문하였다. 봉래는 BC109년 한무제가 번조선을 치기위한 해군이 출정했던 곳인데 봉래각은 중국 4대 누각 중의 하나로 1061년 남송 때 봉래수성 내에 지어졌다.

봉래수성은 명나라의 수군기지이자 해군의 요충지로 봉래각 아래에는 명나라 때 축조한 요새의 성벽 입구에 척가군을 이끌고 왜구를 토벌한 척계광(1528-1588)기념관 및 동상, 그리고 고선박물관(2005년 발견된 평저선 구조의 고려 고선박 전시)이 있다. 이 유적지는 텐진조약(1858)으로 봉래 대신 옌타이가 개항된 덕분에 잘 보존되어 중국의 AAAA급 풍경구로 지정되었다.

사기와 열전이 고작이었던 80년대와 달리 지금은 한서 및 한서 지리지, 후한서, 수경주(지리서) 등이 번역되어 그만큼 우리의 한중고대역사 지식과 안목이 넓어졌다.

그 결과 발해만에서 산둥반도에 이르는 해안이 신석기시대부터 동이족들이 거주했던 지역으로 이곳에서 고인돌, 비파형동검이 일부 출토되었음은 산둥성과 하북성 해안에 거문고, 비파를 타는 동이족이 살았다고 기록한 한서지리지 내용이 사실임을 입증해주고 있다.

그런데 6C말 수의 통일 후 598년 임유관 전투 당시 수 나라의 주라후 수군이 고구려 평양을 치기위해 동래에서 출발했으며 당태종 치세인 645년(안시성 전투)에는 장량이 평양을 공격하려고 래주에서 바다 건너와 비사성을 공격하였고 648년에는 설만철이 래주에서 건너와 박작성을 공격하였다.<삼국사기>

660년 6월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소정방이 백제를 치기위해 성산(래주: 신라 본기)에서 출발했다는 기록이 있다.

거듭된 출정의 결과 한무제 침입 1년 후 고조선이 그리고 당고종의 침입으로 백제, 고구려가 지배층의 내분과 배신으로 멸망했다. 이러한 슬픈 역사적 사실들은 오늘 우리에게 안보의식을 되새겨 보게 한 계기가 되었다.

중국은 2018년 한중 잠정조치수역 서쪽에 선란1호라는 부유식 구조물을, 2024년에는 드론기지로 전용될 수 있는 선란 2호를 설치하였다. 이처럼 중국의 패권 야욕이 한반도를 향해 위협하는데 정부는 중국에 항의도 못하고 속수무책이다.

그뿐인가. 북한군이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넘어와 지뢰를 매설해도 방관하다가 수색 중이던 아군 3명이 DMZ 내에 북이 매설한 목함 지뢰에 다치자 항의도 못했다.

이처럼 정부가 북한에 쩔쩔매는 실정인데 우리 국민마저 안보에 무관심해서는 안된다.

대한민국의 군사력이 세계 5위라는 말만 믿고 경계 근무와 전투태세를 소홀히 하다가 드론전을 체험한 북한에 크게 당할 수 있음이 오늘날 우리가 처한 안보 현실임을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