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훈(僞勳)

홍정덕 논설주간·양주문화원 양주학연구소장

2026-09-14     한북신문
홍정덕 논설주간·양주문화원 양주학연구소장

조선은 황제국이 아닌 왕국이자 중국의 변국이었으므로 왕의 죽음을 ‘붕어’가 아닌 ‘훙서(薨逝)’라 하는데 왕이 훙서하면 명에 사신을 보내 국왕의 죽음을 알리고 중국으로부터 시호를 받아와야 비로서 국장 의례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게 된다.

모든 국장 절차가 종료되면 죽은 왕의 위패를 종묘에 안치하게 되는데 국왕의 위패를 안치한 종묘의 신실마다 신실의 이름 즉 「묘호(廟號)」를 지어 올리게 된다.

그런데 역대 왕들 중에 생전에 왕위에 있었지만 죽은 후에 이 묘호를 받지 못한 왕이 3명이 있다. 묘호를 받지 못했다는 것은 그가 비록 왕위에 있었으나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 되는데 여기에 해당되는 왕이 노산군, 연산군, 광해군이다.

문자 그대로 조(祖), 종(宗)이라는 묘호가 아닌 왕자를 칭하는 군(君)으로만 불린다. 나중에 노산군은 복위되고 묘호를 추증 받아 단종(端宗)이 되었으나 연산군과 광해군은 조선이 멸망하면서도 끝내 묘호를 받지 못했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생전에는 왕이 아니었으나 사후에 왕으로 추증되어 묘호를 받은 추봉왕들이 있다. 덕종(德宗)은 세조의 맏아들로 의경세자에 책봉되었으나 왕이 되지 못하고 죽었다 그의 동생이 예종(睿宗)이고 아들이 성종(成宗)으로 후일 왕으로 추존되면서 덕종이라는 묘호를 받았다,

원종(元宗)은 선조의 아들 정원군(定遠君)인데 광해군에게 죽임을 당한 후 광해군은 정원군의 집을 헐어낸 자리에 경희궁(慶熙宮)을 짓는다. 반정으로 광해군을 쫓아낸 아들 정원군의 아들 인조(仁祖)에 의해 왕으로 추존되어 원종(元宗)이라는 묘호를 받았다,

진종(眞宗)은 영조의 장자 효장세자로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일찍 죽었고 후일 정조(正祖)가 그의 아들로 입적되자 왕으로 추존되어 묘호를 추증받는데 대한제국이 성립된 후에는 다시 황제로 추존되어 진종소황제가 된다,

장조(莊祖)는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다. 아들 정조(正祖)에 의해 장조(莊祖)라는 묘호를 받는다, 문조(文祖)는 순조(純祖)의 아들 효명세자다. 아들 헌종(憲宗)에 의해 익종(翼宗)으로 추존되었고 다시 고종(高宗)이 그의 양자로 입적되었는데 대한제국이 선포되면서 황제로 추존되어 문조익황제(文祖翼皇帝)가 된다.

왕이 아니었으나 사후에 왕으로 추존된 이들 5명의 추존왕에게 봉헌된 묘호는 그러므로 실제가 아닌 관념이며 허위다. 비록 왕의 족보에는 들어가지만 세계(世系)에는 빠진다. 쉽게 말하면 그들의 위패는 종묘 정전, 또는 종묘 영녕전 신실에 모셔지고 신실 묘호가 표시되며 종묘대제의 제향을 받지만 그들은 실제 왕이 아니므로 그들의 존호, 묘호는 모두 위훈(僞勳)이다. 조광조(趙光祖)는 성리학을 조선의 아데올로기로 확립하는 과정에서 중종반정(中宗反正)의 공신들 가운데 정당한 공로 없이 훈작을 받은 가짜 공신들을 가려내 그들의 훈적을 삭제하는 이른바 위훈삭제(偉勳削除)를 진행하다가 숙청당하는데 위훈삭제 실패는 결국 중종반정이 가지는 정당성이 함께 손상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5.18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들 가운데 이른바 위훈(僞勳)이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 사실이라면 이는 5.18 민주화 정신을 훼손하는 중대한 하자가 아닐 수 없다. 관계 당국은 더 늦기 전에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 명단과 유공 업적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광주 정신이 살고 그래야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이 바로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