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안녕을 위협하는 구조적 좌절감

신희주 논설위원·문화커뮤니케이션즈 의장

2026-08-14     한북신문
신희주 논설위원·문화커뮤니케이션즈 의장

최근 12시간 가까이 몸을 거의 움직이지 못한 적이 있다. 찬 바닥에 누워 꼼짝도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당장 휴대전화가 가까이에 있지 않은 상황에 처하자 그 어떤 도움도 청할 수가 없는 것이다.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면 최소한 그 가족이 귀가하는 시간까지는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소리를 외쳐본들 그 소리에 주의를 기울일 리가 만무하다. AI를 포함하여 최첨단의 시스템과 구조를 설계하고 구축한다면서 정작 이 모든 것도 내 손에 닿지 않으면 무용지물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성숙한 개인으로 독립시키면서 동시에 많은 영역을 자기관리의 문제로 책임 지우며 개인을 방치하는 사회에 놓여있다. 개인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를 개인 능력 문제로 탓하면서 말이다.

실상은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가정 안에서 해결하도록 떠넘긴 결과다.

부모의 집은 주거정책을, 부모의 연금은 실업급여를, 자녀의 돌봄노동은 공공돌봄을 대신하며 사실상 가족만이 서로를 돌보도록 사회적 책임을 가족화하며 방치되는 것이다. 즉 자유와 선택을 말하며 실상은 자유주의적 혹은 신자유주의적 사적 책임화(privatization of social responsibility)다.

가족에게 돌봄의 부담이 과잉 집중되고 이마저 속하지 않은 소위 독립적(?)인 개인은 무방비다. 돌봄마저 극단적인 양극화(care polarization)를 보여준다.

수축사회는 인구감소와 경제성장 둔화로 설명된다. 그러나 개인이 체감하는 수축은 기회와 자리가 줄고, 회복의 통로가 좁아져 사회이동성(social mobility)이 정체된 사회다.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이전 세대와 같은 방식으로 계층 상승이나 생활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기대수명은 더 길어졌지만, 개인은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 과거보다 더 많은 준비를 요구 받고, 과거보다 더 어렵게 늦은 출발을 하게 되면서도, 쉽사리 안정과 자산축적으로 이뤄지지 않다가 더 빨리 주변부 노동시장으로 밀려난다. 사회적 활동기가 과거보다 압축된 것이다.

결국 문제는 구조적 좌절감(structural frustration)이다. 좌절감은 노력과 결과 사이의 연결이 끊어졌을 때 생기는 사회적 감정이다. 공부해도 안정적 일자리에 얻지 못하고 일해도 집을 마련하지 못하며 버텨도 중년 이후 다시 밀려나고 아파도 돌봄받을 경로가 보이지 않을 때 사람은 자기 삶을 예측 가능한 서사로 이해하지 못한다. “노력하면 된다”는 말이 때로 모욕처럼 들리는 이유다.

사회적 안보(societal security)의 위기는 여기서 온다. 사회적 안보는 한 사회가 구성원에게 예측 가능한 생애경로, 실패 이후의 재진입 가능성, 위기 때의 돌봄, 최소한의 존엄을 제공하지 못할 때도 취약해진다.

안전한 사회는 아무도 쓰러지지 않는 사회가 아니다. 누구나 쓰러질 수 있다. 누구나 실패할 수 있고 누구나 다시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할 수 있다. 문제는 쓰러졌을 때 발견되는가, 다시 연결되는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가이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사회가 후퇴한 자리에 가족이 강제로 호출되고 가족 밖의 개인은 시장과 제도 사이에 남겨지는 장면이며 개인의 무능으로 포장된 사회적 방치의 구조다. 이런 방치가 누적될 때 개인들의 좌절감은 사회 전체의 정서가 되고 사회적 안녕을 위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