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례라는 이름의 특권
김 후 변호사
노태악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재임 중 세 차례 해외 출장에 매번 배우자를 동반하고 항공비· 숙박비까지 국고로 처리한 사실이 드러났다.
2022년 호주·뉴질랜드, 2024년 독일·에스토니아 (7,194만 원), 2025년 덴마크·스웨덴(9,053만 원) 출장이 모두 부부 동반이었다.
더 묵직한 대목은, 배우자 동행 사실이 선관위가 외부에 공개한 사후 보고서에는 빠져 있었다는 점이다.
해명은 두 갈래다. 노 전 위원장은 “지금까지 전부 그렇게 해왔다”고 했고 선관위는 “헌법기관장의 지위에 상응하는 예우”를 들어 예산을 편성했다고 설명했다.
요약하면 ‘관 례’와 ‘예우’다.
그러나 이 두 단어는 공금 지출의 적법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법리는 단순하다. 예산이 편성되어 있다는 사실과 그 집행이 적법하다는 사실은 별개다.
형법 제 356조(업무상의 횡령)는 업무상 보관하는 타인의 재물을 횡령한 자를 처벌한다.
판례는 용도와 목적이 정해진 자금을 그 목적 외로 사용하면 그 자체로 불법영득의사가 인정된다고 본다(대법원 확립 법리, 사건번호 추가 확인 필요). 직무와 무관한 배우자의 사적 여행 경비를 단지 ‘예산 항목이 있다’는 이유로 국고에서 지출했다면 그 항변은 면책사유가 아니라 오히려 횡령의 외형을 갖추게 한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노 전 위원장 등을 업무상 횡령 혐의로 고발했다. 문제의 핵심은 ‘관례’라는 말의 무게다.
노 전 위원장은 대법관을 지낸 법률가로 누구보다 ‘근거 없는 관행’과 ‘적법한 제도’의 차이를 잘 안다. 그런 그가 “관례였다”고 한다면 그것은 변명이 아니라 진단이다.
최고위 법률가조차 관례라는 이름으로 사적 편익을 누려 왔다는 진단 말이다. 지위가 높을수록 잣대는 더 엄격해야 한다.
헌법기관장의 예우란 더 많은 편의가 아니라 더 투명한 검증의 의무를 뜻한다. 석연치 않은 것은 ‘누락’이다. 떳떳한 관례였다면 보고서에서 배우자 동행을 굳이 뺄 이유가 없다.
관례라 주장하면서 그 관례를 숨긴 것은 스스로도 정당화되기 어려움을 알았다는 방증이다. 선관위가 뒤늦게 “앞으로는 자부담”을 밝힌 것 역시 그간의 관행이 정당하지 않았음을 자인한 셈이다.
제도 개선은 환영한다. 그러나 ‘관례’로 지난 일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법은 지위의 높낮이를 가리지 않는다. 대법관을 지낸 헌법기관장에게도 평범한 공무원에게도 같은 기준이 적용될 때 법치는 신뢰를 얻는다.
이번 사안이 남긴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언제까지 ‘관례’라는 말 앞에서 멈춰 설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