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大義)
홍정덕 논설주간·양주학연구소장
1989년 10월9일 당시에는 동독에 속하였던 라이프치히시의 니콜라이 교회에서는 ‘목숨을 건’ 월요 촛불 예배가 진행되었고 이 예배에는 7만 명의 군중이 참여하였다.
그리고 10월23일에는 무려 30만 명이 기도회에 모여 ‘떠나야 할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지배자들’, ‘우리가 인민이다’등의 구호를 외치며 평화적인 행진을 이어 나간다.
신념에 찬 민중들의 확고한 행동의 결과 11월 9일 견고히 유지되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이듬해인 1990년 10월3일 마침내 독일 재통일을 이끌어내며 역사적인 시민혁명을 완성하게 된다.
이 촛불 예배는 사회주의 동독의 붕괴에 그치지 않고 밖으로 확산되어 결국 동구권 공산국가 전체의 궤멸로 이어지며 최종적으로는 사회주의의 종주국 소련의 체제 소멸과 연방 해체로까지 이어진다.
이후 라이프치히의 니콜라스 교회는 수많은 순례객이 찾는 독일 통일의 성지가 되었다.
우리의 지난날들을 다시 되돌아보자. 오직 가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진행된 우리의 산업화는 이를 효율적으로 이끌어 간 권위주의 정부의 과도한 통제로 말미암아 억압받는 기층이라는 그늘을 만들어냈고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던 개발과 동시에 민주화라는 또 다른 지향점을 만들어낸다.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각각의 지향점은 결국 서로를 향해 정면으로 충돌하며 격렬한 비등점으로 끓어올랐고 극에 달했던 모순은 그러나 결국 상대의 가치를 수용하며 교집합을 구성한 채 연착륙하는 아름다운 결말을 만들어냈다.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단기간에 두 개의 지향점이 이렇게 서로 격렬히 충돌하고 그러면서도 또 서로를 수용하여 상반된 두 개의 가치를 열매로 이끌어 간 나라가 세계사 어디에 존재할까?
생각하면 현재의 우리 대한민국이 차지하는 경제, 문화, 정치, 복지의 세계적 위상은 소용돌이치는 격랑을 건너온 우리의 지혜와 포용이 만들어낸 보배로운 자산이다.
그렇지 않은가? 광주 5,18 묘역에 누운 민주 열사들과 국립 현충원에 잠든 호국 선열들 위로 아침마다 동일한 태양이 뜨고 저녁이면 같은 달빛이 물든다. 라이프치히 니콜라스 교회의 건너편에는 토마스 교회가 있다.
음악의 아버지 바하가 성가대를 지휘하며 고전 성가들을 작곡한 곳 그리고 그곳에 묻혀 있는 곳이다.
라이프치히를 순례하는 순례객들은 촛불혁명의 성지 니콜라스교회 계단에도 고전 음악의 성지 토마스교회 제단에도 흠모의 마음을 묶은 꽃다발을 바친다.
하루 종일 공장 생산대 앞에서 졸음과 싸우며 일해 부모에게 생활비를 보내고 동생들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했던 공장 누나들, 쇠를 녹이는 사막의 열기 속에서 중장비를 몰았던 사우디 근로자들의 희생과 매운 최루탄 가스 먹으며 민주화를 목놓아 외치던 학생들의 열기, 죽음을 무릅쓰고 오월 현장에 나섰던 열사들의 함성을 따로 갈라치고 서열을 매기려 하면 안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못나고 어리석은 것은 이기적인 욕망에 눈먼 정치판의 얼치기들이기 때문이다.
이룰 수 있을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성패에 따른 이익 불이익과도 관계없이 마땅히 추구해야 하는 바른 가치 그것을 대의(大義)라 한다면 대의는 결국 참된 가치의 구현 하나만을 추구하며 헌신한 그 누군가가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거두어 낸 눈물겨운 열매들이다.
참전 학도병들, 4,19 혁명 열사들, 5,18 광주 민주 투사들이 그들이다. 나는 오늘 또 하나의 현장을 주시하고 있다.
폭우로 쏟아지는 장마비에 흠뻑 젖으며 오로지 빼앗긴 참정권을 되찾고 민주주의의 대의를 회복해야 한다고 안타깝게 부르짖는 우리 청년들! 그들과 함께하자! 함께할 수 없다면 박수라도 쳐 주자. 마음속으로라도 힘차게 힘차게 응원해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