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번조선)의 멸망과 한사군

김현규 논설위원

2026-06-26     한북신문
김현규 논설위원

고조선의 멸망에 대해서는 사기와 열전, 한서 본기에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고조선(번조선)과 한과의 전쟁은 한나라 요동도위 섭하가 자객을 보내 조선 비왕장을 살해해 이에 대한 보복으로 조선군이 습격하여 섭하를 죽인 것이 발단이 되어 일어났다.

사기 열전에는 한무제가 번조선(위만조선)을 평정하고 지명도 없이 사군을 설치했다며 우거왕을 죽이고 투항한 삼을 홰청후로, 한음을 추저후로, 왕겹을 평주후, 우거왕 아들 장을 기후, 최를 온양후로 삼았다고 기록하였다. 이에 반해 200년 후에 지은 한서에는 낙랑, 현도, 임둔, 진번 4군을 설치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친일강단 사학자들은 한사군이 한반도에 존재했다고 주장해왔다. 이를 고증하기 위해 환단고기 북부여기를 참고해야 한다. 그 이유는 해모수가 단군조선을 계승하여 건국한 북부여의 누락된 역사가 이 책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BC239년 북부여 시조 해모수는 천왕랑이라 칭하고 웅심산에 의거 난변에 궁궐을 짓고 즉위하였다. 그는 221년 기비가 죽자 기준을 번조선 왕으로 봉하고 연나라 침입에 대비케 하였다.

하지만 BC195년 연왕 노관의 부하였던 위만이 번조선에 망명을 요구해 기준이 상·하운장의 땅에 거주케 했다. 그런데 도적 위만이 세력을 규합하여 침략하자 기준은 바다로 들어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해모수 이후 북부여 왕들은 번조선 찬탈자 위만 무리의 침략에 대비하였다. 그리하여 BC128년 위만 무리를 남려성에서 쳐부수고 관리를 두었는데 이를 「한서」는 예의 우두머리 남려가 28만명과 함께 항복해와 창해군으로 삼았고 2년 뒤 폐지했다고 기록하였다. BC120년에는 장수 고진을 발탁해 고구려 후로 삼고 서압록(요하)를 수비케 하였다. 하지만 이후 위만의 손자 우거에게 많은 영토를 잃었다.

BC108년 번조선이 요동의 동부 도위를 살해하자 한 무제는 군대를 보내 번조선(위만 조선)을 멸망시키고 4군을 두고자하여 북부여에 침략해왔다. 이에 BC106년 북부여의 장수 고두막한이 의병을 일으켜 번조선 유민과 함께 한나라 군사를 무찔러 서안평 즉 옛 고리국 땅까지 회복하였다. 그는 BC86년에 왕위에 올라 북부여라 칭하고 그해 서압록하 상류(요하상류)에서 한나라 군사와 싸워 모두 이겼다. 이리하여 BC82년(한소제5년) 한은 담이, 진번군을 폐지하였다(한서본기). 한무제가 번조선을 평정하고 설치한 한사군은 창해군처럼 일시적인 군현으로 실제했다고 보여진다.

단제선생은 일찍이 광개토호태왕 비문을 근거로 북부여에서 나온 고구려의 초기 역사가 줄어든 사실을 지적한 바 있고 이때 상실한 고조선 영토는 고구려에 의해 수복(多勿: 고토회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