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정보회사 개인정보 유출이 치명적인 이유
김 후 변호사
국내 대형 결혼정보회사에서 정회원 42만여 명의 개인정보가 통째로 빠져나갔다. 2025년 1월 해커가 직원 PC에 악성코드를 심어 데이터베이스 계정을 탈취한 것이다.
보유 기간 5년이 지난 29만여 건의 회원 정보는 파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가 함께 유출됐고 회사는 유출 사실을 인지하고도 72시간 안에 신고하지 않았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과징금 11억 9700만 원을 부과했고 피해자 500여 명이 1인당 1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문제의 본질은 유출된 정보의 결이다. 기존 대규모 유출 사건들과 비교해 보면 차이가 분명해진다. 2014년 카드 3사 사건은 1억 건 규모였지만 유출된 정보는 이름·주민등록번호·카드번호·결제계좌가 중심이었다. KT 870만 명 사건, SKT 유심 해킹 사건 역시 식별정보와 통신 관련 정보에 머물렀다. 신원 도용과 금전 피해의 위험이 컸지만, 어디까지나 ‘거래에 필요한 정보’의 유출이었다.
이번 사건은 다르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는 기본이고, 신장과 체중, 혈액형, 종교, 혼인 경력, 형제 관계, 출신 학교와 전공, 직장, 부동산과 현금 등 재산 보유액, 원천징수 내역까지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결혼정보회사는 가입자의 가장 사적인 영역을 가장 정밀하게 모아둔 데이터베이스다.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을 정보를 단 한 곳에 맡긴 결과가 이런 식의 유출이다. 게다가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을 원하는 사람들의 정보라는 점에서 표적형 결혼사기, 정서적 약점을 노린 보이스피싱, 협박과 신상 노출 등 2차 피해의 경로가 다른 어떤 유출 사건보다 광범위하다.
그런데도 손해배상의 현실은 그 무게를 따라가지 못한다. 2014년 카드 3사 사건에서 대법원은 1인당 10만 원을 인정했고(2011다59834), KT 870만 명 유출 사건은 보호조치 이행을 이유로 손해배상 책임 자체가 부정됐다(2017다207994). 통상 위자료는 10만 원에서 30만 원 사이에 머물러 왔다. 정보의 민감성과 2차 피해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반영한 판결은 아직 흔치 않다.
과징금은 행정 제재로 국고에 귀속될 뿐 정작 피해자의 손에는 거의 닿지 않는다. 위자료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한 기업으로서는 보안 투자보다 유출 후의 과징금을 비용으로 처리하는 편이 합리적인 선택지로 남는다. 정보의 양이 아니라 결을, 거래 정보가 아니라 인생 정보를 다루는 시대다. 이번 사건이 분기점이 될 수 있을지는 결국 법원의 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