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홍정덕 논설주간·양주문화원 양주학연구소장

2026-06-16     한북신문
홍정덕 논설주간·양주문화원 양주학연구소장

커피의 원산지는 에티오피아의 아비시니아 고원이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지금도 빈부를 막론하고 집에 찾아온 손님에게 정해진 규칙을 따라 직접 내린 커피를 대접하는 의식을 치르는 전통이 있다. 최초의 에티오피아의 커피는 음료가 아닌 식품 첨가물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커피의 발견 동기가 들에서 양을 치던 목동들이 지치고 피곤한 양들이 들판에 자생하는 붉은 열매를 먹고 기운을 회복하는 것을 목격하면서였다는 유래담과 깊은 관련이 있다.

커피는 이슬람 상인들에 의해 아라비아 반도의 예멘의 모카 지역으로 전해지는데 이슬람 공동체들 역시 커피의 각성 효과에 주목하여 예배 시간의 지루함과 졸음을 다스리거나 수피수도자들의 염송 수련 시 졸음을 쫓는 약용으로 사용되었고 광야를 이동하는 유목민들이나 여행자들이 야간 이동 시에 졸음을 쫓는 용도로 널리 활용되었다.

커피가 널리 보급되면서 16세기 무렵에 이르면 도시의 이슬람 성원의 주변에 ‘카흐베하네(kahvehane)’라는 커피하우스들이 성황리에 운영되었는데 카흐베하네가 반체제 세력의 회동 장소가 될 것으로 우려한 메카의 시장 감찰관 카이르 베이가 카흐베하네를 폐쇄하고 커피 금지령을 내리는 이른바 ‘메카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커피는 무슬림 사이의 유행을 넘어 이집트, 페르시아 등 각지 이슬람 사회로 그 사용지역이 확장되어 갔고 주로 예멘의 모카항구를 통해 수출되었기에 ‘모카 커피’라는 브랜드명을 획득하기도 한다.

커피의 유행은 이슬람 율법학자들 사이에 할랄식품으로의 판정 여부나 나아가서는 정력 감퇴 작용을 의심하는 의학적 견해들이 충돌하면서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금지식품이 되기도 한다.

이후 커피는 유럽의 상류층에게도 보급되어 이슬람의 주요 수출품이 되었고 영국의 티타임이나 프랑스의 카페 문화 등을 통해 정치권, 예술권 상류사회의 문화양상으로 자리 잡아 간다. 커피가 동양사회에 전해진 것은 이른바 서세동점(西勢東漸) 즉 서양 자본세력의 동방 진출에 동반하여 나타난다. 우리나라에는 주로 고종, 명성황후 등 황실에서 이를 먼저 수용하였고 특히 고종은 커피를 유별나게 애정하였고 덕수궁 정관헌 등을 커피하우스로 활용하기도 하였으며 당시 선교사, 무역상, 외교관 등을 궁으로 초청한 만찬에서 고급 커피를 접대받았다는 다수의 증언과 기록이 존재한다.

초창기 우리나라에서는 커피를 ‘양탕국’ 또는 ‘가배차’라 불렀고 개화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 서울에는 다양한 형태의 커피하우스가 개점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커피하우스의 커피는 상당한 고가의 음료로 특권층의 전유물이었고 광복 후에도 이와 같은 상황에도 여전하였다. 커피가 서민음료로 정착된 것은 서울 올림픽 이후의 일이었다. 다방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서민 커피하우스가 유행하였고 이는 포크 음악, 미팅 등 하이틴문화의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 내며 시대의 문화상황으로 정착되었다.

브랜드 커피라는 보다 고급 사양의 커피문화가 도입된 것은 1980년 이후 비약적인 경제 발전과 연동하여 나타난 2000년 새 세기 이후의 커피문화이기도 하다. 최근 브랜드커피점 스타벅스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오해를 자초하는 논란의 여지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이 사안을 권력이 시대 상황으로 강제 해석하는 것 역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자신들의 문화 취향이 누군가에 의해 강압된다고 느낄 때 분출할 수도 있는 역풍이야 말로 시대 상황을 부정하는 또 다른 강압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