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되어야 할 기억
논설주간 홍정덕(양주문화원 양주학연구소장)
전철 1호선 도봉역 2호 출구에는 작지만 의미있는 작은 공간이 하나 있다. ‘월튼 워커 장군 추모 공간’이다.
1950년 12월 23일 크리스마스이브 전날 의정부 전선사령부로 이동하던 미 8군 사령관 패튼 대장이 바로 이 자리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
낙동강 전선을 고집스럽게 지켜 패망으로 치닫던 전세를 뒤집고 승기를 잡아 결국은 인천상륙이 가능하도록 작전 여건을 만든 명장이 순식 간에 호국의 별로 승화하는 안타깝고 허망한 순간이었다.
월튼 해리스 워커(Walton Harris Walker)는 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912년 6월12일 미 육군 보병 소위로 임관한다. 그는 1918년 1차 대전에 참전하여 프랑스 전선에서 복무하였고 전쟁 후에는 주 방위군의 여러 보직을 거쳐 중국 주둔 미 육군에서 근무하던 중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패튼 전차군단에 편입되어 1942년 8월 제4기갑군단 군단장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는 1948년 일본에 주둔하게 된 미 8군 사령관에 취임하여 8군을 전투체제로 개편하던 중 한국전쟁을 만나게 된다.
맥아더로부터 북한군을 공격하여 38선 이북으로 되돌려 놓으라는 명령을 받고 산하 제24보병사단을 오산 전투와 대전 전투에 투입하지만 강력한 북한군의 전력 앞에서 좌절되고 전술 자체를 수비태세로 전환하고 제1기병사단과 제25보병사단을 추가로 투입했음에도 방어선을 형성할 수 없었다.
미국에서는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망명정부를 구상하였고 맥아더 역시 한국 포기를 결정하지만 그는 예하 지휘관들에게 “한 발도 물러서지 말 것(Stand or die)”을 독려하며 결사적인 현지 방어에 임하면서 현실적으로 유연하게 후퇴를 거듭하여 마침내 낙동강에 방어선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가 이렇게 북한군 주력을 낙동강에 묶어놓은 덕택에 맥아더가 적 후방의 빈 공간 인천에 대규모의 연합군을 상륙시켜 전세를 뒤집는 데 결정적인 전략적으로 기여한 것이다.
중공군의 참전으로 다시 전선이 후퇴하던 1950년 12월23일 오전 10시 의정부에 주둔한 미24 사단 전투지휘소로 급히 이동하던 워커의 짚차를 한국군 6사단 소속 민간 정비사가 자신이 정비한 스리쿼터 수송차량을 몰아 충돌하면서 비극이 발생한 것이다.
그는 알링턴국립묘지에 묻혔으나 후일 그를 추모하여 한강 변에 설립된 영빈관 성격의 호텔에 워커힐이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평택 미군기지 안에는 그의 추모비가 건립되었다.
워커힐 입구에는 그에게 바친 다음과 같은 헌사가 새겨져 있다. “오늘 우리가 장군을 특별히 추모하는 것은 한국전쟁 초기 유엔군의 전면 철수를 주장했던 미국 조야의 지배적인 분위기 속에서 유독 장군만이 홀로 한반도 고수를 주장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공산화를 방지하여 우리의 오늘을 가능케 한 그 공덕을 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의정부에 헌신의 족적을 남긴 한 미군 장군에 대한 기억되어야 할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