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북부, 회색도시를 삶의 색으로
남궁랑 논설위원·경복대학교 명예교수
경기북부를 떠올릴 때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비슷한 장면이 겹쳐진다. 군부대 담장과 철조망, 훈련장의 소음, 그리고 미군기지의 흔적들이다.
특히 의정부와 양주, 동두천, 포천으로 이어지는 경기북부 수도권 공간은 오랫동안 국가 안보의 최전선이자 동시에 이 지역을 규정하는 상징이 되어왔다. 국가안보라는 불가피한 이유도 있었지만 그 지리적 배경은 어느새 경기북부를 ‘긴장된 도시’, ‘회색 도시’, ‘머물기보다는 지나치는 곳’으로 각인시키는 이미지로 굳어졌다.
경기북부 발전을 이야기할 때마다 늘 규제 완화와 대규모 개발이 먼저 거론된다. 교통망 확충, 산업단지 조성, 미군 공여지를 개발해야 지역이 살아난다는 주장이 반복되곤 한다.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여러 지자체장 후보들이 이러한 하드웨어 중심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놓을지 모른다.
그러나 도로가 늘고 건물이 높아진다고 도시의 얼굴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얼마나 빨리 이동할 수 있는가보다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가를 기준으로 도시를 선택한다.
경기북부가 진정으로 넘어야 할 벽은 법과 제도의 규제보다 오랫동안 굳어진 ‘군사 도시’ 이미지일지도 모른다.
반환된 미군 기지 부지를 아파트 단지로 채우기보다 디자인 클러스터, 첨단 IT 밸리, 대규모 문화예술 공원 등으로 탈바꿈해 ‘안보의 도시’에서 ‘기회의 도시’로 시각적 반전을 만들어야 한다. 의정부는 경기북부의 관문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살려 젊은 세대가 모이고 머무는 ‘힙’한 문화 콘텐츠가 들어설 때, 도시는 비로소 새로운 이미지를 갖게 된다.
또 하나의 과제는 구도심과 신도심의 균형 발전이다. 민락지구와 고산지구 등 신도시는 쾌적한 주거환경을 갖추었지만 아직 인프라가 부족하고 의정부역 인근과 흥선동 일대 구도심은 아직 통행량이 많고 활발한 편이지만 노후 건물과 좁은 도로로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의정부역 지하상가와 행복로를 잇는 보행 동선을 세련되게 정비하고 노후 주택가에는 도시재생 사업을 가속화해 ‘뉴트로’ 감성을 살린 골목 상권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신도심의 편의시설과 구도심의 역사적 깊이를 연결하는 교통망 확충이 병행되어야 도시 전체가 함께 살아난다.
경기북부가 가진 또 하나의 소중한 자산은 중랑천과 백석천 같은 수변 공간이다. 그러나 현재의 하천변은 산책로 위주의 단순한 구조에 머물러 있다. 서울 구간과 비교하면 문화 시설과 야간 경관이 크게 부족하다.
물길을 따라 걷고 싶고 머물고 싶은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수변 공간의 고도화가 필요하다. 카페 거리와 야외 공연장, 조형물이 어우러진 수변 라이프스타일 공간은 도시의 분위기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여기에 주요 교량과 산책로에 감각적인 조명을 더하면 여수 ‘밤바다’나 ‘낭만포차’처럼 밤에도 살아 있는 도시 이미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경기북부가 군사 이미지를 넘어서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창한 개발 청사진이 아니라 시민들의 일상을 바꾸는 변화다. 걷기 좋은 거리와 머물고 싶은 공원,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화 공간과 안전하고 쾌적한 생활 환경 같은 일상의 변화가 도시의 매력을 만든다. 이러한 요소들이 쌓일수록 인구는 자연스럽게 유입되고 소비와 경제 활동이 살아난다. 삶의 질 개선은 복지가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성장 전략이다.
다가오는 2026년 지방선거는 경기북부의 변화를 위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더 많은 도로와 더 큰 개발을 약속하는 기존의 하드웨어적 경쟁보다는 어떻게 군사 이미지를 전환하고 삶의 질을 높일 것인가에 대한 소프트웨어적 비전도 강조되어야 한다.
경기북부의 미래는 콘크리트의 높이가 아니라 삶의 깊이에서 결정된다. 이제 개발의 양을 늘리는 경쟁보다 도시의 품격과 일상을 바꾸는 선택이 필요하다. 군사 도시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사람들이 머무르고 싶어 하는 공간으로 거듭날 때, 경기북부는 비로소 새로운 성장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