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복지의 본질을 묻다

임원선 신한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학장

2026-01-13     한북신문
임원선 신한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학장

찬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12월이다. 유독 이번 겨울은 낯설게 다가온다.

그 낯섦의 정체는 거리의 풍경이 아니라 우리네 삶 깊숙이 파고든 ‘기술’의 변화 때문이다. 홀로 계신 어르신이 인공지능(AI) 스피커와 대화를 나누며 아침을 맞이하고 빅데이터가 수도 사용량을 분석해 고독사 징후를 감지하는 세상이다. 바야흐로 사회복지의 현장에도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파도가 밀려왔다.

연말을 맞아 한 해를 갈무리하며 나는 사회복지학자로서 우리 앞에 놓인 이 ‘기술과 복지의 융합’이라는 화두를 깊이 들여다보고자 한다.

기술은 분명 축복이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에게 AI 반려 로봇은 24시간 지치지 않는 말동무가 되어주고 챗봇은 복잡한 복지 급여 신청 절차를 간편하게 돕는다. 효율성의 측면에서 보자면 기술은 인력 부족에 허덕이던 복지 현장에 내려온 단비와도 같다.

그러나 빛이 밝으면 그림자도 짙은 법이다. 나는 이 눈부신 기술의 발전 이면에 드리운 ‘차가운 그림자’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기술이 가져다준 편리함에 취해 정작 복지의 본질인 ‘사람의 온기’를 잊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얼마 전 만난 한 독거노인의 말씀이 뇌리에 박혀 떠나지 않는다. “기계가 약 먹을 시간은 알려주는데 내 손 잡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이 한마디는 기술만능주의에 빠진 우리 복지 현장에 던지는 묵직한 경종이다.

AI는 수천 가지의 대화 데이터를 가지고 있을지 모르나 따뜻한 눈맞춤과 공감 어린 침묵이 주는 치유의 힘은 흉내 낼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디지털 복지’가 결코 ‘휴먼 서비스’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는 이유다.

기술이 행정적 효율과 물리적 돌봄의 보조 역할을 수행한다면 그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은 오롯이 사람의 몫이어야 한다.

사회복지사는 이제 단순한 서비스 전달자를 넘어, 기술이 침범할 수 없는 인간 존엄성의 수호자가 되어야 한다. 데이터를 맹신하기보다 데이터 뒤에 숨겨진 한 사람의 고유한 서사를 읽어내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또한 디지털 기술에 접근하기 어려운 취약계층이 오히려 더 소외되는 ‘디지털 격차’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기술 윤리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역할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복지는 결국 ‘사람이 사람을 돕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기술은 차갑지만 그 기술을 운용하는 우리의 손길은 뜨거워야 한다. AI가 우리 삶을 편리하게 할 수는 있어도 우리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서로의 체온임을 잊지 말자.

다가오는 새해에는 첨단 기술의 편리함 위에 사람의 따뜻한 숨결이 더해지길 소망한다. 효율적인 시스템(System)과 따뜻한 감성(Sensibility)이 어우러진 ‘따뜻한 디지털 복지’의 원년이 되기를, 그리하여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까지 온기가 골고루 퍼져나가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