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천천히
홍정덕 논설주간 양주학연구소장
우리 조상들이 제상을 차릴 때 가장 난감한 제수는 과일이었다. 지금처럼 시설 농업이 발전하지 않았던 당시 제사날이 철을 지나 겨울에 닥치게 되면 과일 자체를 구할 수가 없었던 까닭이었다.
그래서 기제사의 경우 말린 대추, 알밤, 곶감은 제철에 따서 말려두면 이를 사철 쓸 수 있었고 겨울이 아닌 철에는 비교적 오래 저장할 수 있었던 생배를 올리거나 그도 여의치않으면 가루로 만든 조과를 올리도록 하였다. 제수 마련에 애쓸 후손을 위한 배려였다.
이들 제수용 과물 중 가장 정성이 들어야 하는 것이 곶감이다.
다른 제수용 과일과 달리 탄닌이 풍부한 감은 아무리 제철이라 하여도 맛이 떫기 때문에 반드시 껍질을 벗겨 통풍이 잘되는 그늘에 상당 기간 말려야 한다. 잘 익은 곶감에는 표면에 흰 가루가 덮이는데 이를 시분이라 하여 이 시분의 상태를 보고 곶감의 성숙 여부를 파악하였다.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어왔던 흥선대원군의 개혁 정치를 종결한 것은 한 장의 상소문이었다. 최익현이라는 소장 관료가 천하를 뒤덮다시피 하던 대원위의 정치 권위에 과감히 도전하며 “주상의 보령이 이미 20세를 넘겼는데 왜 아직 대원위께서 섭정을 하시는가? 이제 대원위께서는 권병(權柄)을 주상에게 넘기고 은퇴하라”고 주장하자 명분을 잃은 흥선대원군은 즉시 하야하여 의정부 직동(直洞)에 은거하였고 조선의 정권은 고종과 명성왕후 세력에게 돌아간다.
그러나 흥선대원군 세력을 일거에 숙청해 내고 집권한 민씨 정권은 이후 엄청난 실정을 거듭하여 결국은 조선을 망국으로 치몰아 간다. 그들은 흥선대원군의 보수, 쇄국정책을 정면 비판하며 대신 개화, 개방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는데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어설픈 개방정책은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 등 제국주의 열방에게 조선의 정치, 경제, 문화 전반의 이권을 헐값에 양도하고 국내의 철도, 항구, 광산, 산림, 어업 등 전 분야의 개발 이권을 외세에 거의 무상으로 양여하는 참혹한 사태로 이어져 간다.
김홍집 내각의 개혁정책이 피상적, 관념적 시도에 머문 채 실질적 성과를 전혀 거두지 못하자 민심이 이반하면서 거문도사건, 을미사변, 아관파천, 동학봉기 등 연이은 대형 정변이 야기되었고 결국 조선이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는 눈 앞에서 열강이 우리나라 영토 안에서 우리의 국권과 운명을 차지하려 다투는 청일전쟁, 러일전쟁으로 이어진다.
개혁은 ‘가죽을 바꾼다’는 뜻이다. 그만큼 아프고 그만큼 시간이 걸리고 그만큼 심사와 숙고가 필요한 지난한 파괴와 재건의 긴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마치 말리는 감 위에 시분이 배어 나오기까지의 긴 인고의 시간 내내 바람을 맞고 햇살을 쪼이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지금은 개혁 시국인듯하다. 정치형태를 사법을 검찰과 경찰을 부동산 정책을 교육제도를 세제를 모두 바꾼다고 한다. 작금의 이 조급한 상황을 놓고 우리의 미래와 역사는 지금의 우리, 특히 정권 담당자들에게 묻을 것이다. 너무 급하지 않은가? 너무 서두르지는 않는가? 모두에게 묻고는 있는가? 모두에게 동의를 구하고 있는가? 정의롭고 타당한가? 무엇보다 절차는 준수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