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관(史官)이 기록하였다”

홍정덕 논설주간·양주학연구소장

2025-11-14     한북신문
홍정덕 논설주간·양주학연구소장

세조 3년 10월21일 종실의 최고 어른인 양녕대군, 이제는 이미 왕위를 빼앗기고 변방 영월 강가에 유배 되어 있는 단종을 동정하던 화의군 이영, 한남군 이어, 영풍군 이전과 단종의 매형 정종, 장인 송현수를 처형하라는 상소를 올린다.

극도로 문란한 사생활과 방자함을 끝내 못이긴 아버지 태종(太宗)이 대신의 첩을 취하여 동궁에 들이고 이를 질책하는 부왕에게 마구 대드는 양녕대군을 세자에서 폐하고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 동생 세종은 여전히 비리를 거듭하는 형 양녕을 극구 보호하며 돌보아 왔다.

그러나 자신이 왕위를 놓친 것이 동생 세종의 탓이었다고 여기고 원망해온 양녕은 그의 손자 단종을 몰아내는 세조의 정변에 적극 가담한 것도 모자라 끝끝내 단종을 죽음으로 몰아가려 했다. “…신 등은 듣건대 유예부단하면 반드시 후환이 있고 사은으로 대의를 멸절하면 대계를 해친다고 합니다. 전일에 간흉들의 변란에는 노산군이 참여하여 종사에 죄를 지었고… 군사를 일으켜 반역을 꾀하여 장차 노산군을 끼고 종사를 위태롭게 하려고 하였으니 죄악이 이르지 않는 곳이 없어서 천지가 용납하지 않는데 어찌 다시 용서하여 국법을 문란케 하겠습니까? 신 등이 누차 법을 바루시기를 청하였으나 윤허를 얻지 못하여 분울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 정종·송현수 등의 흉악한 모역죄는 왕법(王法)에 반드시 주살하여 용서하지 못할 자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대의로써 결단하시어 전형을 바르게 밝히어서 화근을 끊고 인심을 정하게 하소서”라 하였다.

종실과 대신들의 간청이라는 명분을 거쳐 세조는 금성대군 이유를 사사하고 송현수를 교형에 처하는 한편 논의에 오른 여러 왕자들을 유배하였다.

이후 금부도사 왕방연을 보내어 불쌍한 조카 단종마저 죽인 것은 이를 목격한 영월 사람들은 지금까지 똑똑히 기억하는 사실이다.

그런데 실록은 노산군 즉 단종의 죽음을 “노산군이 이를 듣고 또한 스스로 목매어서 졸(하니 예로써 장사지냈다.”라고 기록한다.

노산군이 자살로 스스로 사태를 책임지고 세조가 단종을 예로써 장사지냈다면 왜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몰래 수습하여 목숨을 걸고 장사 치른 호장 엄흥도를 절세의 충신으로 현창했을까?

“왕관을 쓰려는 자 그 왕관의 무게를 견뎌라”라는 명언이 있다. 자신의 잘못을 동생 탓이라 여기고 그의 손자를 죽음으로 몰아간 양녕대군, 주군의 은혜를 자신들의 영달과 바꾼 훈신들의 배신을 그러나 사관이 묵묵히 기록하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을 잡은 자들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저들을 지켜 보는 역사라는 증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