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 사람 심영(沈影)

홍정덕 논설주간·양주문화원 양주학연구소장

2024-07-30     한북신문
홍정덕 논설주간·양주문화원  양주학연구소장

그는 일제의 한국 강점이 막 시작되던 1910년 9월3일 식민지 조선 강원도 철원군 서변면 관전리 구 철원관아 객사에서 대한제국의 마지막 철원군수였던 심완섭(沈琬燮)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심재설(沈載卨)이며 아오키 진에이(靑木 沈影)로 창씨 개명하는데 이 창씨 명 안에 그의 예명인 심영(沈影)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특이한 예를 보여준다.

할아버지 심상학(沈相學)은 1873년(고종 10년) 문과에 급제해 이조참의와 예조참판을 지냈고 증조부 심경택(沈敬澤) 역시 1833년(순조 33년)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참판, 도승지, 형조판서, 한성부판윤 등을 지낸 명문이었다.

할아버지 심상학이 본부인 연안 이씨에게서 자녀를 얻지 못해 첩에게서 심완섭을 얻었지만 심상학은 14촌 형제 심상갑(沈相甲)의 아들 심기섭(沈琦燮)을 양자로 들였고 심기섭 역시 1894년(고종 31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홍릉참봉을 역임하며 명문의 대를 이어가게 된다. 같은 집안의 정치적 배경을 힘입어 서자 출신이었지만 심완섭도 관직에 올라 철원군수를 지낸 것이다.

경성부 북부 출장소 재동정(현 서울특별시 재동)에 집이 있었는데 그가 자란 넓은 단독주택 기와집에는 다양한 식객들이 드나들며 그에게 신문화와 세계사조의 흐름을 일깨워준다.

그런 명문가의 자제인 동시에 일제 강점기와 해방공간을 통해 조선반도 최고의 미남 배우라는 평을 들은 그를 굳이 <의정부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가 무슨 이유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거주하던 서울이 아닌 의정부의 <의정부공립보통학교> 즉 지금의 <의정부중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경성제이고보> 지금의 <경복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인 의정부공립보통학교 6학년 때(1922년)에 처음으로 연극 무대에 서며 연예계에 데뷔하였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최대의 히트 무대였던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속칭 <홍도야, 우지마라>의 여주인공 차홍녀(車紅女) 역시 1934년 의정부공립보통학교 졸업반에 배우로 데뷔하였으니 일제강점기 최고의 남녀 배우가 모두 <의정부중앙초등학교> 동문이라는 인연으로 엮이게 된다,

차홍녀는 1940년 2월에 관북(關北) 및 만주일대를 순회공연하고 돌아와 그해 말 철원에서 공연을 마친 직후 성홍열로 아깝게 급사하였으나 심영은 계속 연극배우와 영화배우로도 활약하였다.

해방 직후에는 조선영화동맹, 문화전위대 등 좌익조직에 참여하여 시민들을 선동한다는 이유로 김두한, 대한민청 등의 표적이 되면서 1946년 3월 14일 오후 극작가 박영호의 <님> 공연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광통교에서 김두한이 쏜 총에 맞아 하복부를 관통 당했다,

그 후 1947년 12월에서 1948년 4월경 사이에 북한으로 월북하여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연기과장과 평양연극영화대학 강좌장을 역임했으며 1957년 공훈배우 칭호, 1964년 인민배우 칭호를 받았다.

1966년부터 평양연극영화대학 교수로 재직하였으나 1971년 숙청되어 중앙 무대에서 사라졌다.

한 때 명성(明星)으로 빛나던 심영이 의정부와 인연 깊은 ‘의정부 사람’임을 아는 이 별로 없이 잊히는 듯 하여 여기에라도 기록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