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절한 왕실 4형제 국가보훈 사례로 현창돼야“
본지 홍정덕 논설주간 지난달 23일 개최된 문화포럼에서 제기

“왕실 4형제가 국난을 당하여 동시에 순절하고 동형(洞穴)에 합폄(合窆)된 사실은 앞으로 보다 면밀한 자료 발굴과 보완을 통하여 보다 명확히 그 역사성이 입증되고 이후 의정부 향토사를 넘는 국가보훈 사례로 현창(顯彰) 되어야 할 것입니다.”
본지 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은 지난 2월23일 오전 8시부터 개최된 문화포럼(매월 네번째 목요일)에서‘의정부시 고산동 전주이씨 명산도정 묘역 4형제 순절묘의 역사성과 임진왜란 초기 양주지역의 전황’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홍정덕 주간은 “의정부시 고산동 소재 전주이씨 선성군(宣城君)파 명산도정(明山都正) 묘역의‘4형제 순절묘’는 임진왜란 당시 한양이 함락된 상황에서 당시 부친 파성군(坡城君) 이염(李琰)의 묘소를 수묘하던 이극심. 이극성, 이극함. 이극겸 4형제가 묘역을 거쳐 이동하는 일본군과 싸워 중과부적으로 모두 일시에 순국하여 동혈에 함께 묻혔다는 가승(家乘)의 기록이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가의 여부를 당시 양주 지역의 전황을 검토하여 확인하고자 오늘 포럼 주제로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홍 주간은 “4형제 묘소가 위치한 명산도정 묘역은 정종(定宗)의 후손이 묻힌 왕족의 묘역이고 선원계(璿源系)에서 친진(親盡)이 되고도 바로 영의정에 오르는 이홍주(李弘胄)라는 걸출한 인물의 묘소가 함께 있는 조선 최상층 가문의 묘역인바 이 묘역에 군호(君號)를 받은 이염의 아들 4형제의 합폄(合窆) 묘소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급박한 당시 상황을 웅변하는 결정적 방증(傍證) 자료”라고 말했다.
또한 “동시에 4형제의 부친 파성군이 군호를 받은 배경 역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선원계는 왕자로부터 4대까지를 선원계, 즉 왕실의 가계로 인정하지만 하대로 내려가면서 선원계의 위계는 하강되도록 규정되었는데 선성군–명산도정–하양군–파평부령으로 이어지는 선원계에서 파평부형 이찬의 동생 이염이 파성군으로 봉군된 이유를 아들 4형제의 순절에 대한 현창 외에는 찾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홍 주간은 “일본군이 운영하는 별동대와 한양에서 철수하여 양주지역에 잔류한 한양방어 병력, 한양 방어를 돕기 위하여 북상, 남하해온 지방 병력이 여러 차례의 소규모 전투를 벌이게 되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인천부사 이시언(李時彦)의 장수원 전투와 부원수 신각, 유도대장 이양원, 함경병사 이혼(李渾)의 해유령(蟹踰嶺)전투가 있었는데 장수원 전투의 규모와 내용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송산지역의‘장렬’,‘서라리’ 등의 지명 유래에 이시언이 일본군과 싸웠다는 유래담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제법 규모가 큰 전투였다는 것을 짐작하게 하며 헤유량 전투는 임란 최초로 조선군이 승리한 육지전 이었다는 점에서 이후 전황의 전개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한편 고산동 4형제 순절묘의 역사성을 확인하는 작업에서 제기되는 고려 사항은 1) 순절묘와 관련하여 가승 외에는 다른 사료가 없다는 점. 2) 불과 4인이 가토오의 수만 대군과 씨웠다는 정황이 객관적이지 않은 점. 3) 순절묘의 위치가 당시 주요 교통로인 <경흥대로>에서 상당 거리 떨어져 있는 점. 4) 당시 전황과 시간적, 공간적으로 부합되는 가의 여부 등이다.
홍 주간은 “1)항의 경우 급박히 전개되는 불리한 전황에서 임진란 초기 관련 자료가 모두 망실되어 심지어는 선조실록 편찬을 위한 기본 사초(史草)조차 확보할 수 없었다는 당시 정황을 먼저 감안하여 해당 자료 역시 망실되었다고 가정할 수 있고, 2)항의 경우 전술한 것처럼 4형제가 순절을 각오하고 싸운 상대는 가토오의 본진이 아니라 대탄 방어선을 견제, 정찰하려는 일본군 소수 별동대와의 전투였다는 사실을 정황상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3)항의 경우 누원–의정부점–서오랑–축석령–솔모루를 경유하는 경흥대로 본로(本路)와는 별도로 누원–가래울–만가대–외송산–축석령–솔모루로 연결되는 지름길이 있어 특히 공무로 시간을 아껴야 하거나 긴급을 요하는 군사작전의 경우 이 길을 이용하는 사례가 자주 있었다는 사실과 이 첩로가 순절현장인 묘역에 인접하여 있다는 사실, 4)항의 경우 4형제의 순절일이 1592년 5월24일인데 한양 함락이 5월12일, 해유령전투가 16일, 임진강 방어선이 붕괴된 것이 17일, 대탄 방어진이 해산되는 것이 23일, 가토오군이 임진강을 도강한 것이 26일로 전황 상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로 이 모두를 종합하면 역사성의 개연과 배경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